놀이의 재미와 치열한 경쟁 조화 이룬 시즌 1
시즌 3은 단순한 살인극…극적 불안만 증폭
주체와 중심만 남아 설득력 떨어지고 재미 반감
'오징어 게임' 설립자는 오일남(오영수)이다. 막대한 돈을 벌었지만 사는 게 재미가 없어 기상천외한 세계를 만들었다. 직접 초록색 유니폼을 입고 뛰어들 만큼 흥미로운 게임들을 고안했다. "어릴 땐 말이야. 친구들이랑 뭘 하고 놀아도 재밌었어. 시간 가는 줄을 몰랐어. 죽기 전에 꼭 한 번 다시 느끼고 싶었어. 관중석에 앉아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그 기분을 말이야."
그와 VIP들에게 게임은 놀이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를 "일상생활 밖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이하는 자를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는 자유로운 행위"라고 정의했다. "어떠한 물질적 이익도 효용도 없는 행위로서, 명확하게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행해지며, 주어진 규칙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진행된다."
오징어 게임 참가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규정이다. 그들에게 게임은 물질적 이익과 효용이 있는 생산 활동이다. 탈락자가 발생하면 더 큰 상금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자유롭거나 허구적이지 않아 놀이 본연의 재미와 즐거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탈락하면 목숨을 잃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 게임' 시즌 1에서 상반된 두 집단의 시선을 혼합해 반영한다. 놀이의 매력을 뚜렷이 부각하면서 밑바닥 인생들의 치열한 경쟁을 보여준다. 성기훈(이정재)이 우산이 그려진 달고나를 혀로 핥는 신이 대표적 예다. 필사적으로 혀를 날름거리는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포착하고 코믹한 음악을 넣어 놀이의 재미를 극대화한다. 여기에 탈락한 참가자들의 불안한 모습과 총성을 곁들여 긴박감을 고조한다.
줄다리기 게임에선 역동적 움직임과 참가자들의 절실한 얼굴을 교차로 담아 놀이의 매력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전달한다. 징검다리 게임에선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스릴과 공포를 통해 참가자들의 내면까지 헤집는다.
절묘한 조합에는 채경선 미술감독과 정재일 음악감독도 한몫했다. 각각 알록달록한 배경과 동화적인 공간, 초등학교에서 연습했을 악기(소고·리코더·캐스터네츠)들을 활용한 음악으로 순수성과 향수를 강조했다. 게임이 현실과 연결되면 변질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최대한 감추며 놀이 본연의 재미 요소들을 살렸다.
안타깝게도 '오징어 게임' 시즌 3에서 이런 장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가장 먼저 펼쳐지는 숨바꼭질 게임은 단순한 살인극이나 다름없다. 게임 전 참가자 절반에게 칼을 건네며 나머지 참가자를 한 명 이상 죽여야 생존한다고 설명한다. 몸싸움은 정력적이고 원시적인 놀이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구분돼 있고, 후자는 맨손으로 싸우거나 도망쳐야 한다. 공정성과 정의는 물론 재미마저 실종돼 극적 불안을 증폭시키는 데 그치고 만다.
마지막 밀어내기 게임도 다르지 않다. 운영진은 참가자들에게 세 기둥에서 차례대로 한 명 이상씩 떨어뜨리라고 주문한다. 약육강식을 따르는 단조로운 구조에서 치열한 두뇌 게임이나 심리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저 다수가 똘똘 뭉쳐 가장 약한 참가자를 밀어내려고 할 뿐이다. 이들은 성기훈이 숨겨 뒀던 칼을 꺼내 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희생양을 물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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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이 목적이자 방법이 된 게임에서 시청자는 놀이와 철저하게 차단된다. 이는 크게 세 가지 상실을 의미한다. 놀이하는 과정과 (상상력과 창조의 뿌리가 되는) 놀이의 생성·우연·순간 속성, (이분법에 기초한) 형이상학을 극복하게 하는 놀이의 모호한 지위다. 놀이의 주체와 중심만 남아 이야기의 설득력은 떨어지고 재미는 반감된다. 이 드라마에서 시청자의 시선은 VIP와 일치한다. 오일남이 살아 있다면 개탄하지 않을까. 초록색 유니폼을 입을 엄두도 내지 못할 테니.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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