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열린 한국은행의 국정감사를 달궜던 주제는 입시제도의 개혁이었다. 국정감사에서 한은의 주요 책무인 통화정책이나 물가가 아닌 다른 주제가 주목을 받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한은이 지난 8월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 보고서를 통해 대학이 지역별 학령인구 숫자에 비례해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는 상당히 충격적인 주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입시경쟁 과열이 부의 대물림과 주택가격 상승, 저출산, 사교육 부담, 사회 역동성 저하 등 온갖 사회문제를 불러오는데 여러 차례의 제도개편에도 효과가 없자 한은이 보다 극단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한은은 특히 서울대 입학생 중에서 강남지역에 사는 부유층 학생들의 입학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에 대해 우려하며 명문대가 앞장서서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의 지역별 비례선발제 주장에 대해 대학들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서울대는 한은의 주장에 공감할 부분이 있지만 현재의 입시제도 하에서는 현실적으로 실행이 어렵다고 밝혔다. 연세대와 고려대 등도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국회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한은 국감에서도 국회의원들은 대학이 부정적인데 한은이 주장하는 제도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창용 한은 총재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대학들이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꼭 '공정'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대학들이 생각을 조금 바꿔서라도 입시제도를 적극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재차 주장한 것이다.
이 총재의 이같은 발언이 기사를 통해 전해지자 많은 우려와 비판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강남 사는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 아닌가?", "투명한 시험을 통해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다", "본인은 강남 살고, 자식들은 해외학교 보낸 사람이 할 말인가?", "입시에 신경쓰지 말고 한은 업무나 똑바로 해라" 등 원색적인 비난도 많았다.
하지만 이 총재가 이야기한 입시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인 고민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부모의 재력에 따라 대학입시 결과가 달라지고, 이를 통해 부의 세습이 이뤄지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는 한은 보고서에도 잘 나오는데, 소득수준이 높고 사교육이 활발한 강남 3구 출신 학생은 전국 일반고 졸업생 중 4%에 불과하지만 서울대 진학생 중에서는 12%에 달했다. 이를 두고 강남에 사는 학생들이 머리가 좋고 더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는 항변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조사를 해보니 똑같은 학습능력과 잠재력을 가진 학생을 비교했을 때 부모의 재산이 많고 좋은 동네에 사는 학생들이 일반 학생들에 비해 좋은 대학에 진학할 확률이 1.9배나 높았다.
결국 우리가 성적순으로 명문대에 가는 것에 대한 공정을 이야기하려면 부모의 능력으로 좋은 사교육을 받고, 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해 좋은 대학을 가는 것도 공정에 포함되는 것인가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좋은 부모를 만나 명문대학에 가서 급여가 많은 직장에 취직하고, 많은 것을 물려받은 아이들이 다시 강남에 살면서 사교육 열풍을 부추기고, 집값을 끌어올려 과도한 가계부채를 불러오고,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망가져 가는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했다는 점에서 한은과 이 총재의 주장은 의미가 있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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