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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칼럼]어쩌면 노벨문학상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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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열어준 문학과 책의 시절
우리 인생을 뒤흔들어 줄 수 있는
나의 취향에 맞는 작가를 찾아야

[MZ칼럼]어쩌면 노벨문학상보다 중요한 것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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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수상 소식과 함께 온라인 서점들은 먹통이 될 정도로 사람이 몰리고, 한강 작가의 작품들이 모두 절판되는 등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몰리고 있다. 그와 더불어 한강 작품에 대한 옹호와 비판도 넘쳐나는 등 활발한 토론의 장도 펼쳐지고 있다. 문학이 문화의 중심에서 이처럼 주목받는 시절이 대한민국 역사에 있었을까 싶다.


나 역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에 대해 오래전부터 꾸준한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청년 시절에는 알베르 카뮈, 헤르만 헤세, 마르케스 등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을 동경하며 밤새 책을 읽기도 했다. 한강의 작품 중에서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은 예약해두고 배송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정말 사랑한 작가들 가운데는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경우도 많다. 폴 오스터, 필립 로스, 밀란 쿤데라, 장 그르니에 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항상 자국에서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은 것도 아니다. 오르한 파묵, 마르케스, 네루다 등 많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이 본국에서 살해 위협에 시달리거나 해외로 망명가거나 대중적으로 미움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노벨문학상이란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최고의 작가’란 각자에게 가장 중요한 진실을 전해준 작가라 생각한다. 저마다는 각자 최고의 작가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설령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내 취향에 맞지 않거나, 내가 공감할 수 없거나, 내가 그 세계관에 동의할 수 없더라도 내가 잘못된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세상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작가의 작품들을 구입하고 서둘러 읽어보는 것도 좋지만, 자기 자신에게 정말로 잘 맞는 작가들을 탐색하는 여정도 이어가면 좋겠다. 우리나라에만 해도 다양한 작가들이 많고, 관심을 세계로 넓히면 그중에서 내 인생을 통째로 관통하고, 내 존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에 뒤흔드는 '나의 작가'를 만나게 되기 마련이다. 그 작가는 내게는 한강이나 알베르 카뮈가 아닐 수도 있고, 아무도 관심 없는 서점 구석에 먼지 쌓인 무명 작가일 수도 있다. 이번 기회로 서점에 달려간 김에, 그런 '나의 작가'를 누군가는 우연히 혜성처럼, 기적처럼 만나길 바라본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감독, 스포츠 선수, 래퍼, 댄서, 요리사 등을 몇 년간 쭉 보아오면서, 한편으로는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세상의 모든 문화 영역 중 가장 사랑한 것이 문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담아 ‘고전에 기대는 시간’ 같은 책을 출간한 적도 있고, 여러 책을 추천하는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서재’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모두가 자극적인 이미지와 영상만을 쫓는 시대에, 이처럼 문학과 책으로 떠들썩한 시절이 와서 개인적으로는 너무 즐겁고 반갑다.


물론, 이로써 문학과 책의 ‘시대’가 왔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책의 ‘시절’이다. 우리 시대 가장 주목받는 작가의 책을 실컷 읽고 마음껏 평가하되, 꼭 나의 취향에 맞는 '나의 작가'를 찾는 일도 해냈으면 한다. 한 번 찾고 나면, 이제 누구도 평생 이 책의 마력이라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저 서점 어느 구석에는 당신의 인생을 뒤흔들어줄 당신의 작가가 기다리고 있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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