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등 8개 단체, 국회·정부에 건의
"'단타' 경영권 공격세력 악용 가능성"
"기업가치 훼손…코리아 디스카운트 못 막아"
한국경제인협회를 비롯한 8개 경제단체가 22대 국회에서 내놓은 규제법안 입법을 막아달라고 국회와 정부에 건의했다. 이사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 외에도 집중투표제 의무화, 독립이사제 등이 한국 증권시장과 기업 밸류업(가치상승)을 유도하기보다 단기 투자 세력의 경영권 침해 문턱만 낮출 가능성이 크다며 법안 처리를 재고해달라고 촉구한 것이다.
한경협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정무위원회 상정 법안 중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규제에 대한 건의서를 8개 단체가 함께 써서 11일 국회와 정부에 냈다고 밝혔다.
한경협에 따르면 지난 5월30일 22대 국회 개원 후 지난달까지 법사위에는 18건의 상법 개정안이 올라왔다. 이 중 14건은 기업 지배구조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정무위에도 최근 '상장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법안에는 최근 논란이 된 이사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만 들어 있는 게 아니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가 이사를 선임할 때 집중투표제를 의무 실시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감사위원을 모두 분리 선출하도록 하고 독립이사제 도입 등 이사회 구성 방식을 강제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전자 주주총회를 의무화하는 내용도 있다.
경제계 일각에서는 이런 법안을 '기업 지배구조 족쇄법'이라고 부른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기업가치가 훼손돼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심화하고 개인 투자자 보호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8개 단체는 전망했다. 오히려 경영권 공격 세력이나 단기 수익을 노리는 글로벌 헤지펀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밸류업은커녕 코리아 디스카운트만 심해질 것으로 봤다.
8개 단체는 법안이 최대주주 경영 권한을 위축시키는 내용 위주로 설계됐다고 주장했다. 최대주주가 아닌 2·3대 주주 입맛에 맞는 이사회가 구성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주총에서 이사를 뽑을 때 집중투표제를 강제하고 감사위원 전원을 분리선출하는 내용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2인 이상 이사를 뽑을 때 1주당 선임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특히 감사위원 전원을 분리선출하면 투기 세력에 유리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주총 감사위원 1명을 다른 사내외 이사와 분리선출한다. 발의안대로라면 감사위원 모두 분리선출해야 한다. 8개 단체는 "2003년 외국계 행동주의펀드 소버린이 SK를 공격해 약 1조원의 단기차익을 거두고 한국에서 철수했다"며 "법안이 현실화하면 투기 자본 경영권 공격이 기승을 부리고 국부 유출이 반복될 수 있다"고 했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이사회를 구성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문제라고 했다. 발의안대로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바꾸면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자본시장법, 공정거래법 등에 통용되는 사외이사 용어를 모두 독립이사로 바꿔야 한다. 독립이사는 '최대주주 영향을 받지 않는 이사'라는 설명 외에 별다른 말이 없다. 혼란이 커질 수 있다. 정관에 이사회 총원 상한 규정을 없애는 내용, 이사회 내 사외이사 하한선을 현행 4분의 1에서 3분의 1로 높이는 내용도 문제라고 했다.
아울러 이사 충실 의무를 늘리는 법안은 소수 주주 권한을 강화하기보다 기업 경영권만 위축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이슈에 대해 권고적 주주제안을 확대하는 내용,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가 전자주총을 병행 개최하는 내용 등은 과연 소수주주에 실질적 혜택을 줄지 의문이라고 했다.
8개 단체는 "이사 충실 의무가 확대되면 소송이 남발돼 기업이 신산업 진출, 인수합병(M&A), 투자 집행에 차질을 빚고 자금 조달이 위축될 수 있다"며 "행동주의펀드가 (주총장에서) ESG 주주제안을 악용해 기업을 압박할 수도 있다"고 했다.
궁극적으로 기업가정신을 훼손해 한국 경제 체질이 약해질 수 있다고 경제단체들은 꼬집었다. 2020년 감사위원 분리선임, 다중대표소송제,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강화 등 상법 개정 때문에 기업 경영이 위축된 적이 있는데, 22대 국회에서 재현될 수 있다고 했다.
8개 단체는 "더 이상의 규제 강화 입법을 멈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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