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처분 취소
"절도 고의 단정하기엔 부족"
식당에서 자신의 우산과 외관이 유사한 타인의 고급 우산을 잘못 가져갔다가 검찰에서 절도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60대가 헌법재판소에서 구제받았다.
헌법재판소는 서울중앙지검 검사직무대리가 A씨(64)에게 내린 기소유예 처분을 지난달 29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취소했다고 8일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A씨는 2022년 8월 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식당에 방문하면서 자신이 가져온 검은색 장우산을 우산꽂이에 꽂아 뒀다. 약 50분 동안 식사를 한 뒤 A씨는 나가는 길에 타인의 우산을 가져갔다. 그는 자신의 우산을 꺼내 들어 살펴본 뒤 다시 꽂고는 피해자의 우산을 집어서 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A씨가 잘못 가져간 타인의 우산은 '벤츠' 로고가 들어간 20만원 상당의 제품이었다.
우산이 없어졌다는 피해자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 두 달 뒤인 같은 해 10월 A씨를 피의자로 지목했다. A씨는 경찰에 출석하며 피해자의 우산을 반환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식당을 나가면서 피해자의 우산을 내 우산으로 착각하고 잘못 가져간 것"이라며 "경찰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 우산을 잘못 가져간 사실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A씨에게 절도 혐의가 인정된다고 봐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추가 조사 없이 A씨에게 절도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기소유예는 혐의가 인정되지만 검사가 여러 정황을 고려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이다. 형사 처벌은 아니지만 수사기관이 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한 것이라 징계 등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
헌재는 A씨가 청구한 헌법소원을 심리해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로서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여기에는 A씨가 사건 전 기억력 저하를 호소하며 검사와 처방을 받은 적이 있는 것도 작용했다. 헌재는"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 외관이 유사한 타인의 우산을 자신의 우산으로 착오하는 일은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며 "A씨와 피해자의 우산 모두 검은색 장우산으로 색상과 크기, 손잡이 형태가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또 "사건 당시 A씨는 62세로 과거 기억력 저하를 호소하며 신경심리검사를 받은 사실 등이 있었다"라면서 "A씨의 연령과 건강상태를 고려할 때 절도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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