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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웨이의 비결③]'정몽구-구본무' 의기투합, 하이브리드 역사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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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자동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양산차 적용
17년째 이어온 현대·LG 배터리 협업
두 회장, 평양 회동서 '맞손'…산업 지도 바꿔
하이브리드·전기차 배터리서 韓기업 선두 토대 마련
현대차·기아, 하이브리드 누적 판매량 400만대 눈앞

"국내 기술로 만든 하이브리드, 우리도 한 번 해봅시다."


2007년 9월 평양 옥류관에선 대한민국 산업 지도의 역사를 바꿀 중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찾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의 이야기다. 이날 오찬에서 정 회장은 옆자리에 앉은 구 회장에게 한국형 하이브리드의 중요성과 자동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사업의 잠재력을 역설했다. 평소 추진력 있고 뚝심 있기로 소문난 정 회장과 소탈하고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구 회장은 그 자리에서 의기투합했다. ‘세계 최초 리튬이온 배터리 양산차’ 프로젝트는 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현대웨이의 비결③]'정몽구-구본무' 의기투합, 하이브리드 역사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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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해도 전 세계 하이브리드 시장은 도요타가 장악하고 있었다. 도요타는 두 개의 모터로 충전과 주행을 병행하는 직병렬식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고안했다. 배터리는 파나소닉의 니켈 메탈 배터리를 썼다. 현대차도 하이브리드 기술 지원을 위해 도요타 실무진과 여러 차례 접촉했다. 자존심을 굽혀가며 기술은 배워올 수 있을지라도 특허를 보유한 도요타가 부르는 게 값이었다. 도요타의 파트너인 파나소닉 역시 싼 값에 배터리를 공급해줄 리 없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했다.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 경영진은 물론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도 회의론이 짙었다. 정 명예회장은 재경, 구매, 생산기술 등 각 부서 고위경영진을 한 데 불러 모아 하이브리드 개발을 위한 전폭적인 지원을 지시했다. 연구소에는 연구개발(R&D)에 걸림돌이 있으면 언제든 본인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했다. 현대차는 도요타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병렬식 하이브리드를 개발하고자 했다. 이 시스템 핵심은 양산차에 적용 가능한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이었다. LG화학의 도움이 절실했다.


[현대웨이의 비결③]'정몽구-구본무' 의기투합, 하이브리드 역사 바꿨다 2009년 세계 최초 리튬이온 배터리 양산차로 출시된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사진=현대차]

정 명예회장이 구 선대회장을 설득해준 덕분에 프로젝트에 속도가 붙었다. 결국 2년 후인 2009년 현대차 브랜드 최초의 하이브리드 차량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가 탄생했다. 현대차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하나의 모터를 탑재하고 클러치가 엔진과 모터를 붙였다 뗐다 하며 주행하는 병렬식이다. 클러치의 제어를 통해 모터와 엔진을 오가는 연비 운전이 가능하다.


배터리는 LG화학이 공급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썼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리튬이온배터리는 노트북이나 휴대폰 등 소형 IT기기 위주로 쓰였다. 기술 자체가 생소한 건 아니었지만 문제는 자동차에 탑재할 수 있도록 고전압이면서도 안전성이 담보되는 배터리를 만드는 일이었다.


현대차와 LG화학은 2009년 아반떼 하이브리드를 통해 세계 최초 리튬이온 배터리 적용에 성공했다. 1996년 닛산이 최초의 리튬이온 전기차를 선보였지만 양산차는 아니었다. 닛산이 세계 최초 리튬이온 배터리 양산형 전기차 리프를 내놓은 건 현대차 아반떼 하이브리드가 나온지 1년 후인 2010년이다. 현재 전기차에 널리 쓰이고 있는 자동차용 리튬이온 배터리는 현대차가 테슬라나 도요타보다 앞서 도입했다.


김동건 현대차 배터리개발실장은 "당시 자동차용 배터리는 도요타가 개발한 니켈 수소(메탈) 배터리만이 유일하게 신뢰성과 안전성을 담보하고 있었다"며 "일본 제품을 수입해서 쓰는 것은 쉬운 길이었지만 우리는 어려운 국산화 개발의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전기차 탑재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대가 됐지만 그 시작에는 현대차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17년 전 두 기업 총수의 역사적 만남은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자동차·배터리 산업의 지형도까지 바꿔놨다. 현대차그룹은 2009년 개발한 하이브리드를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기술 발전과 함께 쏘나타, 그랜저 등 중대형 차종은 물론 싼타페, 카니발 등 RV 모델에도 하이브리드 모델을 확대 적용했다. 현재 판매 중인 하이브리드 모델은 HEV는 13종,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5종이다. 현대차·기아 글로벌 하이브리드(PHEV 포함) 누적 판매량은 지난해 300만대를 넘어섰으며 올해는 400만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초기만 해도 변속 충격, 연비 부족 등 병렬식 하이브리드에 대한 불만도 많았지만 이를 하나하나 받아들이며 개선하기 시작했다.


하이브리드에서 쌓아온 기술 자산은 전기차에서 꽃을 피웠다. 하이브리드는 전기모터와 엔진을 오가며 실시간 제어를 해야 하기에 파워트레인 기술의 정점으로 분류된다. 현대차는 촘촘하게 쌓아온 하이브리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기차 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적용한 모델들은 충돌안전평가나 글로벌 자동차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고 있다.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현대차·기아 전기차 점유율은 10%를 돌파했다.



하이브리드차는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제조사 2위 도약의 발판이 될 전망이다. 올 상반기 현대차·기아의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전년 대비 15% 성장한 49만대를 기록했다. 여기에 2026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주행거리 연장형 하이브리드(EREV)까지 갖춰지면 친환경차 판매가 추가로 확대될 수 있다. 자동차 업계 고위 관계자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감소) 시대에 현대차는 하이브리드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점에서 강력하게 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다"며 "두 총수의 선견지명으로 시작한 사업이 한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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