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안전시스템운영팀 소속
딴쩌툰(미얀마), 김영국(중국), 카이(베트남) 매니저 인터뷰
외국인 현장 근로자에게 모국어로 안전교육
"돈 벌러 타지 온 외국인들, 다치면 안 돼"
"추락하지 않도록 벨트를 매세요"(하이 목 야이 다이 안 투언 데 짠 비 러이·베트남어)
"작업연장을 점검하세요"(렛까잉 끼리야 스세흐묵고 록사웅바·미얀마어)
현대건설이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위해 만든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인 ‘모바일 HPMS’에서 나오는 음성 안내다. 이 앱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건설 현장에서 쓸 수 있는 다국어 번역이다. 중국·베트남·미얀마·태국·캄보디아까지 5개 국어가 실려있다. 건강관리 같은 일상생활 회화는 물론 형틀·철근 같은 작업용 회화, 추락·낙하 같은 재해방지 회화까지 500개가 넘는 문장이 들어가 있다. 한국인 직원이 원하는 문장을 찾아 재생 버튼을 누르면 외국인 근로자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다.
"시중에 있는 번역기로는 건설 현장에서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하기가 힘들어요. 현장 용어들이 따로 있으니까요. 그래서 현장에서 필요한 말들을 나라별로 정리하고, 우리 목소리로 직접 녹음해서 쓰게 하면 어떨까. 이런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현대건설 안전시스템운영팀 소속 입사 동기인 딴쩌툰 매니저(미얀마), 김영국 매니저(중국), 카이 매니저(베트남)는 번역기를 만든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2일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본사에서 만난 이들은 "올해 여름은 폭염에 대한 안전 수칙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당부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다. 이제는 한국이 동남아보다 더 덥다"며 웃었다.
세 명의 주요 업무는 협력업체 소속 현장의 외국인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이다. 이 일을 하려고 산업안전보건기사 자격증까지 땄다. 이들은 "현장에 가보면 전체 근로자 중 30% 정도가 외국인 노동자다. 아파트 공사며 터널, 도로공사까지 없는 곳이 없다"며 "타지로 돈 벌러 온 근로자들은 다치는 걸 가장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겨우 한 두 달 배운 한국어 실력으로는 안전교육을 이해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들은 모국어 안전교육을 시작했다. 세 명이 직접 현장에 가거나 화상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미얀마어, 중국어, 베트남어로 교육을 해준다. 이들은 "예를 들어 열사병에 안 걸리려면 일을 하다가 얼마나 휴식 해야 하고, 현장 안에 휴게시설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아야 해서 이런 것들을 모국어로 알려준다"며 "생각지도 않게 자기 나라 언어로 교육을 받으면, 외국인 근로자들도 반가운 마음에 안전에 대해 없던 관심도 생겨난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상 문제 해결에도 한몫한다. 이들은 "토목공사 현장에서는 단체숙소 생활을 하는데, 한국 근로자와 외국인 근로자들 간 말이 안 통하다 보니 오해가 생길 때도 있다"며 "생활 규칙을 정리해서 써서 방에 붙여놓기도 하고, 중재도 해준다"고 소개했다. 일하다가 가슴이 뭉클한 적도 있었다. 한 아파트 현장소장이 "낯선 땅에 와서 고생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하고 싶다"며 나라마다 명절이 언제인지 알려달라고 했을 때가 그랬다.
건설업은 제조업보다 보수가 높아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에 노출된 업종이다. 이들은 "코리아 드림을 쫓아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안전교육을 해주는 것도 건설사들이 해야 할 일"이라며 "이렇게 해야 외국인 노동자들도 건설 현장에서 숙련공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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