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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간 양육비 안주고 자녀 사망보험금만 챙긴 母…法 "1억 줘야"[서초동 법썰]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2분 4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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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모씨와 한모씨는 2002년 9월 혼인한 뒤 A씨와 B씨 두 자녀를 낳고 살다가 2007년 3월 협의 이혼했다.


이혼 당시 송씨의 부모가 두 자녀를 양육하는 대신 양육비는 모두 남편 송씨가 부담하기로 했다. 그리고 실제 송씨는 이후 한씨에게 양육비 분담을 요구하지 않았고, 택배일이나 일용직, 화물차 운전기사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양육비를 혼자 부담했다.


14년간 양육비 안주고 자녀 사망보험금만 챙긴 母…法 "1억 줘야"[서초동 법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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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는 가끔 자녀에게 소액의 용돈을 보내준 것 외에는 자녀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았음은 물론, 면접교섭도 하지 않아 송씨나 자녀들과 별다른 교류 없이 지냈다.


그러다가 이혼한 지 14년도 더 지난 2021년 12월 15일 둘째 B씨가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022년 4월 송씨의 형은 교통사고 가해자 측 보험회사에 B씨의 사망보험금을 청구하기 전 한씨에게 연락해 한씨 몫의 법정상속분 중 일부만 지급받는 내용으로 협의해줄 것을 요청했다. 14년 넘게 송씨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은 만큼 한씨가 받을 보험금 중 일부를 과거 양육비 명목으로 포기해달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한씨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한씨는 자신이 B씨의 법정상속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보험금 전액을 받겠다고 했다.


송씨는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보험회사는 교통사고 가해자의 '약관 위반에 따른 약관상 유상운송 면책'을 주장하면서 책임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보험금의 지급을 보류한 채 책임보험 한도 내에서의 보험금을 지급했다. 이에 따라 2022년 5월 송씨는 9250만원, 한씨는 8670만원을 각각 보험사로부터 받았다.


14년 넘게 양육비를 주지 않던 한씨가 법정상속분의 보험금 전액을 수령해가자 송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이사장 이종엽)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2022년 6월 공단의 법률 지원을 받아 한씨를 상대로 과거 양육비 1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혼 후 A씨가 성년에 이르렀을 때까지 14년 4개월 동안의 과거 양육비를 8600만원, 이혼 후 14년 7개월 만에 사망한 B씨의 과거 양육비를 8850만원으로 산정, 총 1억7450만원의 과거 양육비 중 1억원을 지급하라는 취지였다.


또 송씨는 보험회사를 상대로 나머지 보험금을 청구하는 소송도 냈는데, 양육비 소송 1심이 끝나기 전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재판에서 한씨는 송씨가 이혼 당시 양육비를 모두 부담하기로 해놓고 이제 와서 과거 양육비를 청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송씨가 수년간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한씨에게 양육비 지급을 요청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장기간 양육비를 청구하지 않았다는 사실관계만으로 송씨가 이혼 당시 양육비를 혼자 부담하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양육에 필요한 사항을 그 후 변경하는 것은 당초의 결정 후에 특별한 사정변경이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당초의 결정이 제반 사정에 비춰 부당하게 됐다고 인정될 경우에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설령 이혼 당시 그 같은 합의가 실제 있었더라도 여러 사정에 비춰 한씨도 양육배를 지급해야 할 수 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한씨는 송씨와 협의 이혼한 후 A씨가 성년에 이르기까지 약 14년 4개월, B씨가 사망한 시점까지 14년 7개월 동안 자녀들과 별다른 교류도 없고 경제적인 지원도 없이 지내다가 B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법정상속인의 지위에서 보험회사로부터 보험금을 수령한 점, 한씨의 주장과 같이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녀들을 양육할 수 없었다는 사정을 인정할 만한 자료가 부족한 점 등에 비춰 송씨가 자녀들의 과거 양육비를 모두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1심을 맡은 의정부지방법원 제2가사단독 이하림 판사는 지난해 12월 한씨에게 과거 양육비 6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장차 한씨가 보험회사로부터 추가 사망보험금을 받게 될 지위에 있지만, 1심 판결 선고 당시에는 아직 구체적인 액수가 확정되지 않은 점과 과거 양육비를 일시에 청구했을 때 발생할 경제적 부담 등을 고려해 한씨가 지급해야 할 과거 양육비 액수를 정했다고 밝혔다.


송씨는 항고했다. 송씨를 대리한 공단 변호사는 한씨가 이미 고액의 보험금을 수령한 데다가, 장차 보험회사로부터 추가로 고액의 보험금을 수령할 예정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감액 필요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청구취지도 과거 양육비 전부를 청구하는 것으로 확장했다.


2심 진행 도중 교통사고 가해자가 형사사건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송씨는 2024년 3월 보험회사와 소를 취하하는 대신 법정상속분에 해당하는 2억4400만원의 추가 보험금을 받기로 합의했다.


2심 재판을 맡은 의정부지법 제1가사부(재판장 박주영) 역시 이혼 후 14년 이상 자녀들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한씨에게 과거 양육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이혼 후 수년간 송씨가 양육비 지급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두 사람 사이에 양육비를 전부 송씨가 부담하기로 한 합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한씨의 주장과 같이 양육비를 모두 송씨가 부담하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송씨가 양육비 지급을 구하는 이 사건 심판을 청구한 이상 이는 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해 정한 양육비 부담부분의 변경을 구하는 취지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한씨가 ▲이혼 후 A씨에게 소액의 용돈을 보내준 것 외에는 별다른 경제적인 지원도 없이 지내다가 B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법정상속인의 지위에서 8670만원을 지급받은 점 ▲향후 추가 사망보험금으로 2억4400만원을 지급받게 될 것으로 보이는 점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녀들을 양육할 수 없었다거나 면접교섭할 수 없었다는 사정을 인정할 자료가 부족한 점 ▲꾸준히 소득활동을 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해 지난달 16일 한씨에게 과거 양육비 1억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송씨를 대리해 이번 소송을 진행한 공단 소속 김수연 변호사는 "장기간 양육비를 청구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양육비 청구를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이 사건은 항고심에서 추가로 지급받을 보험금까지 고려해 1심보다 과거양육비를 증액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며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는 외면한 채, 상속인의 권리만 내세우며 사망보험금을 수령하려는 얌체 부모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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