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나눌 상대 없는 직장인 "고립 인지 못해"
갤럽, '회사에 베프 있나' 조사…"인간 본성"
고립시 해소 위한 사회 안전망 있어야
"운이 좋아야 하는 것 같아." 청년고립24시 기획기사를 본 한 지인은 직장에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는 것 자체가 운의 영역인 듯하다고 했다. 30대 중반 여성이자 1인 가구 10년 차 직장인인 그는 기사 속 사례가 꼭 자신과 비슷하다며 스스로 고립돼 있음을 깨달았다고 털어놓았다. 회사에서 해소 못 한 답답함을 친구, 가족과 만나 털어놓고 싶지만 "야근이 많아 퇴근하고 나면 전화 한 통 하는 것조차 '미안한' 시간이 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고립됐다고 인지조차 못 한 사람도 많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인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직장인이 적지 않다. 아시아경제와 블라인드의 '직장인 고립' 설문조사에서 직장인 2명 중 1명은 직장생활 시작 이후 고립감이 심해졌다고 고백했다. 하루에 8시간 넘게 회사에 머물지만, 마음을 나눌 믿을 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 가족, 친구와 떠나 오롯이 직장 생활을 하기 위해 타지에 살고 있다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온종일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고립돼 있지 않다'고 쉽사리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기사가 나간 이후 회사에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있어야 하냐는 냉소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각자 밥벌이하러 온 공간에서 일에만 집중하면 그만이지, 굳이 관계를 맺고 친분을 다질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다. "직장은 야생", "말은 듣기만 하고 입 밖으로 내뱉지 마라" 등 기사에 달린 댓글이 이러한 반응을 보여준다.
이미 10여년 전 같은 반응을 겪은 곳이 있다. 세계적인 여론조사업체 갤럽이다. 갤럽은 매해 직장인을 대상으로 '회사에 가장 친한 친구(Best friend)가 있는가'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2000년대 중반 관리자와 직원 1000만명 대상 인터뷰를 기반으로 경영 상태를 평가하는 12개의 문항을 만들었는데, 그 중 열 번째 문항이 바로 이 문항이었다. 문항을 공개하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학교가 아닌 직장에서 직원 간의 '우정(friendship)'이 생산성과 무슨 연관이 있냐는 의문과 비판이 이어졌다. 갤럽에 12개 문항을 바탕으로 회사 직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맡긴 경영진들이 결과를 전달받는 과정에서 이 문항을 보고 왜 필요하냐고 물었다고 한다.
12개 문항을 만든 짐 하터 갤럽 수석 사이언티스트는 "직원의 우정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영진은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직장을 제외한 사회 활동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대 사회에서 회사에서 고립될 경우 직원의 소속감과 성과는 줄어들고 이직할 가능성은 커진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한 전력회사에서 팀원 간의 연대가 있을 때 서로가 안전모를 쓰게끔 한 번 더 신경 쓰면서 사고율을 낮추는 데 기여한다는 증거도 제시했다. 직원이 사회적으로 연결돼 있을 때 생기는 무형의 가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공지능(AI)이 주목받고 로봇이 업무 곳곳에 적용되는 시대여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 없이 고립된 직장인이 다수라면 개인은 물론 직장을 넘어 사회 전체가 곪을 수밖에 없다. '운이 좋아야' 마음을 나눌 상대를 만나는 현실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사회적 연결이 탄탄하게 구축돼 누군가 고립됐을 때 언제든 손을 뻗어줄 수 있는 안전망이 갖춰진 사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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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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