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같은 엄청난 문제를 우리(미래 세대)에게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습니다.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우리는 꿈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2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헌재)에서 열린 '기후위기 소송' 최종 변론에 나선 서울 동작구 흑석초 6학년 한제아양(12)은 "지금 할 수 있는 걸 나중으로 미룬다면 우리의 미래는 물에 잠기듯 사라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헌재는 이날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낸 기후 헌법소원 4건에 대한 최종변론을 진행했다. 한 양은 2022년 아기 기후소송을 청구한 62명의 어린이 중 한 명이다.
한 양은 최후진술 도중 "어른들도 저와 같은 나이였을 때 학교에서 기후위기 속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줬나요"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미 학교에서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 지를 배우고 있다"며 "(미래에) 기후위기가 닥친 상황에서도 살아가야 하고,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어른들은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수 있지만, 어린이들은 그럴 기회가 없었다"면서 "이 소송에 참여한 것이 미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또 해야만 하는 유일한 행동"이라고 거듭 촉구했다.
이날 변론에는 한양 외에도 청소년 기후소송을 낸 김서경씨, 시민 기후소송을 낸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 팀장도 발언에 나섰다. 황 팀장은 "기후위기 시대 국가의 우선적인 책무가 시민의 삶과 기본권을 지키는 것임을 헌재가 밝혀주길 바란다"며 "대한민국 헌법이 기후위기 시대의 권리장전으로 기록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자국 정부가 설정한 'NDC 목표치'를 놓고 최고법원에서 소송이 전개된 것은 아시아 국가들 중 한국이 첫 사례여서 더욱 주목된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40%(2018년 배출량 대비) 감축하겠다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가 청구인들의 ‘안정된 기후에서 살 권리'를 비롯한 헌법상 환경권, 생명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헌재 재판관 9인이 따져보기 위한 것이다.
청구인들의 최후진술에 앞서 박덕영 연세대 법무대학원 교수가 참고인으로 출석해 진술했다. 박 교수는 "기후변화 대응은 지구상의 국가 모두가 같이 노력해야 할 의무이지만, 그동안의 배출량이나 책임이 크고 기후대응역량 강한 국가들은 더 큰 책임감과 역할을 수행해야 된다"면서 "우리나라는 누적 배출량도 세계 17위이고, 역량 면에서 볼 때도 유엔통계국 분류, 세계은행 분류, 어떤 기준으로 봐도 선진국의 역할을 다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역설했다.
이에 맞서 정부 측에서는 유연철 유엔(UN)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사무총장(전 외교통상부 UN기후대사)이 참고인으로 나섰다. 유 사무총장은 "기후변화는 긴 호흡을 갖고 봐야 한다"면서 "(2030 NDC 목표치를) 사법적 판단으로 넘기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양측의 참고인을 향해 재판관들은 세부적인 질문을 던져 문답이 오가기도 했다.
지난달 23일에 이어 이날까지 변론 절차는 모두 종료됐다. 재판관들은 이후 합의를 거쳐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법조계에서는 이은애 재판관이 퇴임하는 올해 9월 이전에 결론을 낼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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