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직구(직접구매) 규제 논란은 규제(직구 규제)와 진흥(기업 경쟁력 제고)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함정에 빠진 결과다. 직구가 아니어도 유해물질 범벅이 된 제품을 막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고 지금도 하고 있다. 직구 물량이 폭증하니 국민안전을 위해 좀 더 강화하겠다는 지점에서 규제의 명분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KC인증을 강제하고 알테쉬(알리, 테무, 쉬인)같은 중국 플랫폼에 위협받는 국내 기업을 살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불편이냐 생존이냐’의 문제로 정부를 거들었다. 그는 "유해물질 범벅 어린이용품이 넘쳐나고 500원 숄더백, 600원 목걸이가 나와 기업 고사가 현실이 된 상황에서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게 문제"라고 했다.
소비자들이 ‘알테쉬’에 놀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걸 이 가격(초저가)에 팔아?"였고 다른 하나는 "이걸 이 가격(비싼 가격에) 팔았어?"였다. 아무리 봐도 비슷하거나 동일한 제품인데 적정 마진을 넘어 몇 곱절이나 비싸게 팔린 것을 보고 분노한 것이다. 중국산을 한국산으로 일명 ‘태그갈이’를 해서 팔기도 했다. 정부 논리대로라면 소비자들은 당분간 더 많은 돈을 주고 사서 국내 기업들을 도와줘야 한다. 자유시장경제를 수호하겠다던 윤석열 정부가 ‘북한식 쇄국정책을 펼치는가’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준석 개혁신당 전 대표도 "난로 켜고 에어컨 켜는 격"이라며 "어린이제품의 안전문제를 핑계로 유통업계를 대변해주는 양두구육(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실제로는 개고기를 파는 것)"이라고 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며 "무식한 정책"이라고도 했다.
정부가 대책을 철회하고 대통령이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찜찜하다. 이번 대책에는 당정대에서 당과 대 모두 빠졌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국무조정실 중심 해외직구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았다고 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처음 들었다"고 했다. 그는 "보고할 때 포인트를 잡아서 ‘무엇이 중요하고 이런 쟁점이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보고해야지, 그냥 덤덤하게 보고해 놓고 ‘보고하지 않았냐’고 해서는 잘 모른다. 그거는 제대로 된 협의가 아닌 것"이라고 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준비했는데 제대로 된 정책 조정이나 정무적 판단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았다면 무책임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17일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해외 직구(직접구매) 정부가 걸러냅니다"라는 문구의 홍보포스터를 올렸다. ‘걸러낸다’는 의미를 담아 LG전자의 공기청정기 제품을 넣었다. 포스터와 함께 관련 대책 리플릿들이 쭉 나열돼 있었다. 직구 금지 논란이 한창일 때도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 지난 19일 정부가 사실상 철회하자 리플릿들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몇 번 양보해서 아니면 말고 식의 대책이 나올 수는 있다. 그것도 집권 초에나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집권 3년 차다.
이경호 이슈&트렌드팀장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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