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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타그램]여행이 사진으로만 남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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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가 ‘대화의 희열’이란 TV 프로그램에서 여행 이야기를 하며 일본 지하철역에서 녹음해 온 소리를 들려줬다. 사람들 발소리와 웅성거리는 소음과 안내방송이 뒤섞여 들렸다. 함께 출연한 기자는 “일본에 와 있는 것 같아요”라며 감탄했다. 고화질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여줬으면 ‘와 있는 느낌’ 까지 들었을까? 소리에만 집중하고 장면을 상상하면서 감각이 극대화되었을 수 있다. 그림이건 영상이건 글이건 있는 것들을 모두 보여주고 말해버리면 더 이상 궁금한 것도 상상할 것도 없어서 내면에 어떤 느낌을 촉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여행지에서 보이고 들리는 것들을 글로 써보라고 했다. 글로 묘사하면서 의미를 되새기는, ‘말 그림’이라 했다. 글은 존재하는 것들과 경험하는 것들이 감각에 닿아서 지각과 생각을 거친 후의 반응이다.

[언스타그램]여행이 사진으로만 남는다면... 기억도 비눗방울 처럼 사라질 것이므로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 놓는다. 바닷가 바위에는 또 다른 자아 표출의 낙서가 어지럽다.(홍콩,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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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어디를 가든 보이는 모든 것들을 사진에 담으면서 사진이 모든 기억과 감각을 대신해줄 것이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모든 경험을 기억할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여행도 음식도 친구도 인스타그램에 있으면 된다. 풍경도 사진 속에 있고 음식도 친구도 숙소도 추억도 거기 있다. 모든 여행이 사진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기념되고 저장된다. 많은 사람에게 그건 이제 핸드폰 속이다.

[언스타그램]여행이 사진으로만 남는다면... 베트남 후에, 2018

의미란 반드시 말로 정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고 여행이 반드시 어떤 의미를 수반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찍은 사진은 넘치고 특별한 기억도 시간도 증발해 버리고 나면 사진 말고 무엇이 남을까? 사진을 뒤져 보면 단편적으로 기억은 나겠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래서 세상과 인간의 관계들은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인식을 기대하는 건 무리겠다.


[언스타그램]여행이 사진으로만 남는다면... 러시아 이르쿠츠크, 2016

영국의 사상가 존 러스킨은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요인을 의식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에 대해 쓰거나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하여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물과 생명의 근원까지는 아니더라도 감각을 통해 보는 세상에 대한 구체적 이해를 얻게 되고 기억 속에 살아있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러스킨은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고, 기념품을 사거나 자기 이름을 기둥에 새기거나 사진을 찍는 행위 등은 이런 소유욕에 대한 저급한 표현이라고도 했다. 오래전 말이니 지금 그 현실성을 말로 따지기 어렵다. 사진 찍는 이유도 여행의 의미도 사람들마다 다를 테니까.

[언스타그램]여행이 사진으로만 남는다면... 피지 난디, 2013

[언스타그램]여행이 사진으로만 남는다면... 로마, 2009

[언스타그램]여행이 사진으로만 남는다면... 런던, 2009

[언스타그램]여행이 사진으로만 남는다면... 제주도, 2015



허영한 기자 youngh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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