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 허위사실 유포 잇단 유죄
사실 적시·공연성 여부가 관건
명예훼손 범죄는 급증 추세
최근 5년 새 명예훼손 사건 발생이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직장 내에서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험담과 허위사실유포에 대해 법원의 유죄 판결이 잇달아 나왔다.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명예훼손죄가 충분히 성립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은 지난달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대형 통신사 직원 A씨(34)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2019년 3월 회사 흡연실에서 직장 동료에게 “B씨가 다른 지점 기사와 관계를 갖고 애를 가져서 어제 남편 몰래 연차를 쓰고 혼자 병원에 가서 중절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A씨는 2019년 4월에도 사내에서 다른 동료에게 “B씨가 기사들이랑 놀아나더니 형부 몰래 애가 생겼는지 혼자 지우러 갔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B씨는 다른 남성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이 없고, 남편과 상의하고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A씨 측은 사실적시가 아닌 의견표명이고 특정인에게 한 사적 대화로서 전파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악의적인 글을 지속해서 올려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서울동부지법은 지난해 10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및 협박 혐의를 받는 대형 로펌 직원 C씨(29)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C씨는 전 남자친구였던 변호사와 비서 사이의 관계를 의심해 비방하기로 마음먹었다. C씨는 ‘한 비서가 술자리에서 몰래 녹음한 내용을 기반으로 정리했다’며 변호사들과 비서들이 불륜 행위를 하는 등 문란한 사생활이 많다고 블라인드에 글을 올렸다.
또 ‘우리 회사는 동물의 왕국인 듯’이라며 남자 변호사들과 여자 비서들이 서로 추파를 던지고 내연 관계를 맺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댓글에 변호사 3명과 비서 2명의 얼굴 사진을 올렸다. C씨는 메신저를 통해 해당 내용이 사실인지 묻는가 하면 사무실 책상 위에 쪽지를 놓는 등 협박 행위도 벌였다.
대법원 판례상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는 가치 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이다. 보도, 소문, 제삼자의 말을 인용하더라도 그 표현이 전체 취지로 봤을 때 사실이 존재를 암시하는 경우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본다.
또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개별적으로 소수의 사람에게 사실을 적시했더라도 그 상대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적시된 사실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때에도 혐의가 인정된다.
명예훼손 범죄는 지속해서 느는 추세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명예에 관한 죄’ 발생 건수는 2018년 2만7695건, 2019년 2만8885건, 2020년 2만9631건, 2021년 3만814건, 2022년 3만4906건을 기록했다.
특히 온라인상 명예훼손 심각해지고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은 2018년 6641건, 2019년 7594건, 2020년 9140건, 2021년 1만1354건, 2022년 1만2370건으로 나타났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예전에는 누가 험담을 해도 그냥 넘어갔지만, 이제는 고소가 활발히 이뤄지니 사건이 많아진 것”이라며 “명예훼손은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전파 가능성이 있다면 한두 사람한테 얘기해도 성립되니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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