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작년 사상 최대 배럴 생산
국제유가 일제히 큰폭 하락
미국의 원유 증산 여파에 하락하고 있는 유가 탓에 세계 최대 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아시아로 수출되는 석유 가격을 배럴당 2달러로 인하하기로 했다. 이는 2021년 11월 이후 최저 유가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에너지류 증산에 나서고 있는 미국이 지난해 사상 최대 배럴의 원유를 생산한 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격 인하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OPEC+(OPEC 회원국과 비OPEC 협의체)는 지난해 11월 원유 감산을 통해 가격 방어에 나섰지만 하락세를 막지 못했다. 급기야 점유율 유지에 나선 사우디가 8일(현지시간) 원유 수출 가격을 대폭 인하하면서 국제유가가 또 한 번 급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사우디가 아시아로 수출되는 석유의 가격을 인하하기로 한 건 세계 최대 수출국이 생산량을 모두 팔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전했다.
이날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 종가 대비 4.1% 하락한 배럴당 70.77달러로 마감했다. 이는 지난해 11월16일(4.9%)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 같은 날 국제유가 벤치마크인 2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배럴당 76.12달러로 3.3% 떨어졌다. 사우디의 국영 에너지기업 아람코가 아시아 수출용 원유의 공식 가격을 배럴당 2달러 인하한 게 유가 급락 원인이었다.
유가는 지난해 9월 말 이후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브렌트유는 지난해 9월18일(94.43달러) 정점을 찍은 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 여파에도 하락, 배럴당 77.04달러에서 해를 마감했다. 지난 3일 후티 반군이 홍해 상선에 공격을 가해 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서 소폭 반등하기도 했지만 유가 상승세로 이어지진 못했다. SEB그룹의 원자재 분석가인 비에른 실드롭은 "사우디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이라며 "일시적으로 시장 점유율 유지를 우선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가가 떨어지고 있는 데는 비OPEC+인 미국이 연일 사상 최대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은 사상 최대인 1290만배럴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0월엔 원유 생산량이 하루 1300만배럴을 넘기기도 했다. OPEC+는 유가가 급락하자 지난해 11월 하루 220만배럴 규모의 감산을 통해 가격 방어에 나섰지만 유가 내림세를 막지 못했다.
다만 향후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둔화될 수 있다는 점은 유가 상승의 요인이다. 컨설팅 업체 래피단 에너지그룹에 따르면 미국의 올해 원유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약 30만배럴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지난해 생산 증가분(100만배럴)과 비교할 때 둔화된 수치다.
여기에 대형 석유 회사들이 소규모 경쟁사들을 인수하고 있다는 것도 원유 생산량 둔화의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10월 엑손모빌은 셰일업체 파이오니어를 약 600억달러에, 셰브론은 석유탐사 기업 헤스를 53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또 올해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대선,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의 확전 가능성 등 지정학적 변수가 많다. 인베스코의 글로벌 자산 배분 연구 책임자인 폴 잭슨은 "이런 변수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며 "이럴 경우 2024년 브렌트유 가격이 100달러를 넘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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