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0억달러 자금 유입
전체 70%가 정크본드에 투자
이달 미국 회사채 펀드 시장에 3년 만에 가장 많은 자금이 유입됐다. 인플레이션 둔화, 고용 시장 냉각 등 경기 둔화로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사이클이 종료됐다는 기대감이 커지며 회사채 시장에 온기가 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2일(현지시간) 시장정보 제공업체인 이머징 포트폴리오 펀드 리서치(EPFR)에 따르면 이달 1~20일 미국 회사채 펀드에 160억달러가 넘는 자금이 유입됐다. 이는 월간 기준으로는 2020년 7월 이후 3년여만에 최대 규모다.
미 회사채 펀드 중에서도 수익률이 높은 정크본드(투자부적격 회사채)를 주로 담은 펀드에 전체 유입액의 70%가 넘는 114억달러가 투입됐다. 같은 기간 투자등급 회사채에 투자하는 펀드에 유입된 자금인 50억달러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다. 지난달만 해도 고위험·고수익 채권을 담은 하이일드 펀드에서 180억달러가 넘는 자금이 유출된 것에 비춰보면, 얼어붙었던 회사채 투자심리가 크게 개선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 Fed가 지난 1일 기준금리를 종전 수준인 5.25~5.5%로 2회 연속 동결하면서 금리인상 종료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결과로 분석된다. Fed가 내년 '피벗(pivot·통화정책 방향전환)'에 들어가면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이 줄어들고,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 없이 높은 투자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얼라이언스 번스타인의 윌 스미스 미국 하이일드 채권 담당 이사는 "우리는 시장 전반에 걸쳐 투자심리의 큰 변화를 목격했다"며 "투자자들이 회사채 가격 추가 하락에 대한 베팅을 종료하면서 대규모 안도 랠리가 미 회사채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 경제가 냉각되고 있다는 신호도 기준금리 정점론에 불을 붙이고 있다.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은 3.2%를 기록해, 전월(3.7%) 대비 둔화한 것은 물론 시장 예상치(3.3%)도 하회했다. 지난달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도 15만개로 전월(29만7000개)과 비교해 크게 줄었다. 전날 공개된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서 금리인하와 관련된 언급은 없었으나, 경기 둔화가 지표로 확인되면서 시장의 피벗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UBS는 이르면 내년 3월, 모건스탠리는 내년 6월부터 Fed가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금리 전망 변화로 회사채 투자 가치도 높아지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자료에 따르면 투자등급 회사채와 미 국채의 신용 스프레드(수익률 차이)는 이달초 1.3%포인트에서 현재 1.17%포인트로 줄었다. 투자 부적격 회사채와 미 국채 간 스프레드는 같은 기간 4.47%포인트에서 3.95%포인트로 좁혀졌다.
다만 Fed의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 될 경우 회사채 시장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투자회사 아폴로의 토스텐 슬록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신용등급 최하위 기업들은 고금리 장기화 시나리오에서 가장 취약하다"며 "레버리지가 많고, 현금흐름이 취약한 이들 기업의 디폴트가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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