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률 인터뷰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황닥터役
"다양한 배역·장르 연기 목표…인생작 만나길"
'황쌤 같은 사람이 내 곁에 있었으면.'
배우 장률(34)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감독 이재규)에서 연기한 정신과 전문의 황여환을 보고 많은 시청자가 보낸 반응이다. 유능하고 부족함 없는 의사로, 일에는 완벽한 모습을 보이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어쩔 줄 모른다. 한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곁을 맴돌며 다정하게 챙겨주며 한없이 직진한다. 가끔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귀엽고, 진심이 따뜻하게 전해진다. 전작에서 피 칠갑을 하고 눈을 희번덕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보고 또 보고 싶은 로맨스로 시선을 붙잡는 판타지 캐릭터다.
1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아시아경제와 만난 장률은 "펠로우 3년 차인 여환이 의사로서 성장해가는 모습이 흥미로웠다"며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며 한 인간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이하 '정신병동')는 정신건강의학과 근무를 처음 하게 된 간호사 다은이 정신병동 안에서 만나는 세상과 마음 시린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린다.
장률은 제작진의 도움으로 강남 서울성모병원 의사·간호사들을 만나 자문하며 배역을 준비했다. 의사로서 자세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떠올렸다. 그는 "처음에는 의사답게 신뢰감을 주고 의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7회에 등장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환자 최준기(김대준 분) 에피소드가 마음을 붙들었다고 했다. 해당 에피소드가 담긴 대본을 보고 7시간 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떠올렸다.
"사연을 읽으며 슬펐어요. 마음이 아파서 많이 울었죠. 하염없이 울다가 '율아, 정신 차려. 너 이 배역 연기해야 해.' 되뇌면서 겨우 빠져나왔어요. 울다 힘들어서 자문해주시는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어요. 의사로서 이런 환자를 대해야 하는데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다. 눈물이 나는데 환자 앞에서 울어도 되냐고 물었죠. 감정을 드러내면 환자가 힘들 수도 있으니까요. 그랬더니 '아프고 속상하면 울어도 돼요' 하시더라고요. 순간 용기가 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맞아. 나는 의사이기 전에 사람을 표현하는 배우지. 배우로서 느끼는 시선과 배역이 인물을 바라보는 마음, 인간적인 모습도 잘 담아보자."
장률은 인터뷰 내내 '(촬영 당시) 서른세살의 나'라는 말을 많이 했다. 고민과 부담을 조금 덜게 해준 말이었다. 그는 빈틈없이 준비하고 촬영장에서 꼭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도 강했다고 털어놨다. 배우에게 '완벽주의' 성향은 프로페셔널이면서 엄청난 부담이기도 하다. 작품을 찍으며 이 또한 다독이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 순간 이 사람이라면 어떨까, 세밀하고 정확한 감정을 찾아가고 싶어서 고민하는 스타일이다. 늘 다그치는 타입의 배우였다. '정신병동'을 찍으면서도 연기를 잘하고 있는 걸까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 부족하고 서툴러도 '서른 세 살, 지금의 내가 바라본 시선'이라고 생각하고 칭찬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황여환은 같은 병동의 간호사 들레(이이담 분)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한없이 직진한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 고백 장면도 관심을 모았다. 자신의 진심을 순수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반응을 얻었다.
"들레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거죠. 사랑하니까. 용기 내서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랄까. 서투른 철부지 같지만, 이 사람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음이 열리게 만드는 순간 같아요. 들레가 '저 만나면 똥 밟는 거예요'라는 대사도 이해 안 됐는데 들레를 알아가면서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가 가진 방어기제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게 돼요. 하지만 들레는 빛나는 멋진 사람인데 왜 그럴까. 당신과 내가 다르다고 생각할까 답답하기도 하고요. 답답함에서 용기가 나온 게 아닐까요."
장률은 '정신병동'을 통해 생애 처음 키스신도 연기했다. 당시를 떠올리며 얼굴이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러면서 "연습을 해볼 수도 없으니 막막했다"며 웃었다.
"촬영장에서 '저 키스신 처음 찍어요' 라고 계속 말하고 다녔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모드로요.(웃음) 서투르지만 극에서 이들도 처음 입 맞추는 장면이니까 애틋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기대도 됐죠. 그날 옥탑방에 내리쬐는 햇살도 예뻤어요. 해가 주는 따뜻함이 카메라에 잘 담겼더라고요."
장률은 이이담을 촬영장에서 열심히 관찰했다. 달레를 연기한 이이담에 관해 "멋진 배우"라고 했다. 그는 "현장에서 밝고 많이 웃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격이 명랑하더라. 웃을 때 밝은 사람이다. 현장에서 배우들과 이야기하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서 들레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겠다 싶었다. 여환이가 들레를 웃게 해주고 싶지 않을까 떠오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황쌤의 순정적인 모습에 여성 시청자들은 큰 호응을 보였다. 실제 모습과 얼마나 비슷할까. 장률은 "황여환은 사랑하는 사람한테 직진하지만, 장률은 조심스러운 성격이다. 여환처럼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며 웃었다. 이어 "그런 점에서 많이 배웠다. 사랑 앞에서는 서투르지만 용기 내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도 배웠다"고 말했다.
장률은 실제 타인과 친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한 타입이라고 털어놨다. 인간관계에서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편이라고. 연우진을 통해 한순간 마음이 열리는 마법 같은 경험을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연우진과 실제 친구 같은 느낌을 내야 했다. '형, 어떻게 할까요?' 물었더니 형이 세트장을 한 바퀴 걷자고 했다. 천천히 걸으며 형이 어깨동무하면서 '이런 거 아닐까?' 말했다. 그때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신체 언어가 주는 따뜻함을 느꼈다. 뭐든 할 수 있겠구나, 용기가 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부터 연우진한테 뭐든지 이야기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진짜 친구는 그런 거 아닐까. 따뜻해졌다. 부담감이 사라지고 마음이 열렸다. 그런 순간을 경험했다"고 했다.
"'정신병동'은 촬영을 마치고 1년 후에 공개가 됐어요. 선물 같은 좋은 작품을 만나다니, 축복 같아요. 한 인간으로서, 또 배우로서도 좋은 영향을 받았어요. 사람들을 사랑하고 바라보는 시선과 그들을 어떤 시선으로 기다려주고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됐어요. 요즘 '춘화연애담'을 찍고 있는데 현장에 나갈 때 마음가짐도 달라졌어요. 나를 채찍질하기보다 주변을 돌아보고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해요. 앞으로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또 장률의 정체성이 정확하게 담긴 '인생작'도 만나고 싶어요. 좋은 태도로 건강하게 일을 해나가다 보면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요?"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