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튀르키예 통해 구리 우회 수출
사실상 원산지 세탁
"제 3국 거쳐 서방 제재 효과 방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 구리 생산업체가 튀르키예를 통해 원산지를 세탁, 구리를 우회 수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가 서방의 원유 가격상한제에 맞서 원산지를 숨기거나 운송비를 부풀려 석유를 수출하는 것처럼 금속 부문에서도 서방의 제재를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를 그치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3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세계 최대 원자재 회사인 글렌코어는 지난 7월 러시아 구리업체인 UMMC로부터 최소 5000t의 구리를 수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글렌코어가 수입한 러시아산 구리는 튀르키예와, 이탈리아를 거쳐 인도된 것으로 전해졌다.
UMMC는 미국이 지난 7월 광범위한 제재를 가한 러시아의 구리 생산기업이다. 글렌코어가 UMMC의 구리를 사들인 건 미국이 제재에 착수하기 전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러시아와 가까운 튀르키예가 러시아산 원자재의 환적 허브 역할을 하면서, 앞으로 얼마든지 '메이드 인 러시아(러시아 생산)' 딱지를 세탁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이 주도하는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물론, 러시아와 계속 긴밀한 외교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구리 거래량만 봐도 이 같은 우려는 과장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스위스 무역정보업체인 트레이드 데이터 모니터에 따르면 올해 1~7월 튀르키예의 러시아산 구리 수입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3배 가량 증가한 15만9000t으로 집계됐다. 시장조사업체 CRU 그룹 조사를 봐도 올 상반기 튀르키예의 구리 음극재 및 선재 수입량은 33만t으로 1년 전보다 12만5000t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CRU 그룹은 "튀르키예 국내 수요를 훨씬 초과한 규모"라고 분석했다.
튀르키예에서 미처 소화하지 못한 구리 물량은 이탈리아로 수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탈리아는 올해 튀르키예의 최대 구리 수출국으로, 전년 동기 대비 수출 규모가 3% 성장했다. 이탈리아 정부 측은 이와 관련해 "EU는 제재 이행과 관련해 제3국을 경유한 수출입으로 문제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외신은 "글렌코어와 같은 서방의 대기업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서방의 제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유럽 정책 입안자들의 기대 등을 고려해 신중히 움직여야 한다"며 "튀르키예, 중국, 아랍에미리트(UAE) 등 제3국을 통한 러시아와의 무역이 서방의 제재 효과를 방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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