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美·韓 달라, 상충관계 배제할 수 없어"
"중립금리를 확실하게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통화정책 제한의 정확한 수준에 대해서는 항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미국의 견조한 경기를 근거로 한 중립금리 상승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지난 25일 열린 잭슨홀 미팅에서 중립금리에 대해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발언을 하면서 시장의 미 중립금리 상승 가능성 우려는 일단락된 분위기다. 다만 미국 경제학계를 중심으로 중립금리 상승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 중립금리 상향 논란이 향후 지속되면서 우리나라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다. 중립금리가 높아지면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용해야할 필요성이 커진다.
사실 이번 잭슨홀 미팅에서 시장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중립금리에 대한 파월의 시각이었다. 중립금리란 경제가 과열 혹은 침체가 없는 잠재성장률 수준의 금리로, 경제성장과 안정적인 물가상승률이 균형을 이루는 이상적인 금리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중립금리보다 과하게 인상시키면 경기가 급격하게 둔화할 수 있고, 기준금리가 중립금리에 못 미치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기준금리를 중립금리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중립금리는 통화정책의 주요 수단이 통화량에서 금리로 전환된 이후 통화정책 기조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중립금리 논란이 더욱 증폭된 것은 팬데믹 이후 실질중립금리 향방에 대한 경제학계의 의견이 팽팽히 엇갈리면서다. 세계 최고의 경제 석학으로 꼽히는 올리비에 블랑샤르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교수는 팬데믹 이전까지 인구구조 변화, 생산성 둔화, 과잉저축 등으로 중립금리가 하락세를 지속해왔으며, 앞으로 저수준으로 회귀할 것이란 입장이다. 반면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최근 블룸버그 TV 인터뷰를 통해 시장이 미국 재정적자에 따른 여파를 주시해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중립금리가 올라갔고, 올라가고 있으며, 올라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서머스 교수는 기준금리가 향후 몇 달간 한차례, 혹은 그 이상 인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Fed 인플레이션 목표치 2%를 고려한 장기 명목중립금리를 2.5% 내외(실질중립금리 0.5%)로 추정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중립금리 상향 논란이 불거진 이유는 기대 인플레이션의 상방위험이 지속되는 가운데 실질중립금리도 상승세를 나타낼 경우 팬데믹 이전의 저물가·저금리에 기반한 경제운용과 자산관리가 불가능해지면서 자산가격 재평가와 함께 변동성 확대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중립금리 상승 가능성은 고금리 장기화를 시사하는데, 이 경우 우리나라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제금융센터 김성택 전문위원은 "생산성과 노동력 증가율의 영향을 받는 잠재성장률, 인구 변화 등 그간 실질중립금리의 하락을 주도해 온 요인들의 영향력이 약화하고 있어 실질중립금리 하락요인과 상승요인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잭슨홀에서 파월 의장이 '기준금리는 시장의 중립 기준금리 추정치를 상회한다'고 언급하면서 새로운 발언을 우려하던 시장의 분위기는 다소 진정됐으나 중장기 방향성의 불확실성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미국의 중립금리 상향 논란을 주시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4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의 중립금리가 올라갈 경우 당연히 우리나라 통화정책은 더욱 쉽지 않을 수 있으며, 상충관계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우리나라가 실물경제를 고려해 금리를 낮추고 싶은 상황이 올 때 만약 미국이 굉장히 높은 금리를 유지한다면 반드시 미국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 한국간 통화정책 기조 변화가 가져올 수 있는 금융시장 영향, 특히 최근 금리 동조화가 되는 영향들이 많을 경우 제약 조건이 더 커지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다만 이 총재는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과 상황이 다르다고 언급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이후 구조 변화가 미국보다 적은 편이었고, 미국은 재정이 굉장히 많이 늘어난 데 비해 우리는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어 꼭 미국과 같이 중립금리가 반드시 올라간다는 쪽으로만 작용하고 있지 않다"며 "고령화와 중국 경제의 장기 성장률 하락에 따라 잠재성장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굉장히 많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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