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이 불법 파업으로 공장을 세웠더라도 회사의 매출이 감소하지 않았다면, 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노조나 노조원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는 판결을 대법원이 내놨다. 회사의 매출 감소가 발생하기 전에 불법 파업을 끝내고 부족했던 생산량은 나중에 추가 근무로 메꿨다면, 불법 파업으로 인한 매출 감소와 고정비용 손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대법원이 간과한 점이 있다. 조업 중단으로 인해 손해가 난 생산량을 만회할 때 발생하는 전기세 등 고정비용과 다른 작업을 할 수 있었는데 못 하게 된 기회비용 등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을 하지 않았다. 노조가 파업 기간 중 발생한 매출 손해 등을 나중에 복구하면 불법 파업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판결은 기업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불법 파업으로 인한 추가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될 때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대법원의 판단이 불법 파업에 따른 손해 복구에만 치중돼 있다는 지적은 피하기 힘들다.
이 판결대로라면 앞으로 노조는 온갖 불법 집회를 열어도 그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면제받을 방법이 생긴다. 파업을 끝낸 다음에 초과 근무 등으로 부족했던 생산량만 채운다면, 손해배상을 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불법 파업으로 인한 생산량을 복구해야 하는 기한도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대법원이 두루뭉술한 판결을 내놓는 바람에, 앞으로 하급심이 혼란에 빠지게 됐다. 가령 몇 시간 또는 며칠 단위로 ‘꼼수 파업’을 벌이고 몇 달에 걸쳐 조금씩 근무 시간을 늘려 생산량을 야금야금 회복시키면, 이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여부를 두고 엇갈린 판결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에 최종적인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책임을 파업 참여자 등 근로자에게 지우는 단서를 달았지만, 결국 대법원이 사실상 불법 파업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판결을 한 셈이다. 불법 파업을 제한하지 않고 노조의 손해 책임만 면하는 판결은 파업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기업 현장에서 쏟아져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부족 생산량을 만회하려면 특근비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데 온전히 피해자인 회사의 몫이 된다"고 주장했다.
파업은 노동자가 행사할 수 있는 정당한 쟁의행위다. 하지만 불법 파업이 용인돼선 안 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노동자에게 불법 파업의 치트키를 쥐여 준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