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회 동창 김대기 비서실장, 조태용 안보실장
대통령,국무총리,대기업 총수,프로야구 선수…
시대 바뀌어도 '파워엘리트'들 변함없이 배출
한국 사회에서 명문고를 이야기할 때 올해 개교 123주년을 맞은 경기고를 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대 흐름에 따라 명멸하는 가운데서도 브랜드를 유지하는 몇 안 되는 고교 중 하나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한덕수 국무총리(63회), 김규현 국가정보원장(70회) , 박진외교부 장관(70회),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71회), 조태용 국가안보실장(71회) 등 경기고 출신들이 요직에 진출했다.?
이들이 모두 경기고-서울대를 졸업했다는 공통점이 있어 언론에서는 'KS(경기고, 서울대)라인의 부활'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 정관계는 물론 법조계, 재계, 학계 등 사회 각계에서 맹활약하는 동문들이 많다.
특히 대통령실의 두 축을 이루는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과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1956년생 동갑으로 경기고 71회 동기동창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두 사람은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길을 걷다 대통령실에서 만났다. 김 실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행정고시에 합격(1978년, 22회)하며 공직에 들어섰다. 조 실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1980년 외무고시에 합격하며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김 실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때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책실장을 지냈다. 조 실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때 국가안보실 1차장을 지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 김 실장에 대해 "경제 전문가이면서 정무 감각을 겸비하고 있고 다년간의 공직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적 국정운영을 뒷받침할 전문가"라고 설명했다. 조 실장 임명에 대해 대통령실에서는 지난 3월 30일 "외교적인 디테일을 가미하는 데는 학자 출신보다 현장에서 외교했던 경험이 있는 인물이 더 적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대통령, 국무총리, 대기업 총수, 서울대 총장, 건축가, 프로야구 주장…'KS' 마크
경기고 동문들은 출신 동문들에 대해 머리가 비상하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있다는 얘기다. 이상돈 중앙대학교 명예교수(66회)는 "동문들은 우선 공부를 잘했다. 그런 면에서 머리가 아주 똑똑한 친구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반도체의 경우 경기고 출신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기고 출신 인사들의 특징이 있는데, 굳이 '내가 경기고 나왔다'고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만큼 경기고는 '파워 엘리트'의 요람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가 언급한 인물은 '한국 반도체의 선구자' 강기동 박사(49회)다. 강 박사는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1958년 유학을 떠나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반도체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귀국해 한국 최초의 반도체 공장인 '한국반도체'를 설립했다. 삼성전자가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1978년 삼성반도체를 출범시켰으며, 이것이 오늘날 삼성전자의 모태가 됐다.
경기고는 정·관계에서도 큰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우선 총리를 역임한 동문이 상당수다. (이하 존칭 생략·표기 순서는 졸업순) 윤석열 정부 한덕수 총리를 비롯해 초대 총리를 지낸 이범석(경기고 전신 경성고등보통학교 중퇴, 이후 1956년 경기고 명예 졸업), 최규하(33회), 박충훈(34회·총리서리) , 진의종(총리서리), 이회창(49회)·이홍구(49회) 씨가 총리를 지냈다. 고건(52회)씨도, 김영삼 전 대통령 임기 말과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초기 두 차례 총리직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정운찬(62회) 씨가, 박근혜 정부에서는 황교안(72회)씨가 총리를 지냈다. 경기고가 배출한 대통령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정계에서는 국회의원은 물론, 당대표도 여럿 배출했다. 이회창 씨가 신한국당·한나라당 총재와 자유선진당 대표, 손학규(61회)씨가 바른미래당 대표, 안상수(64회) 씨가 한나라당 대표, 황교안 씨가 미래통합당 대표를 역임했다. 경기고 출신 국회의원 비율도 압도적이다. 2008년 5월, 국회 개원 60주년을 맞아 제헌국회부터 17대 국회까지 역대 의원 4398명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고 출신(경성제일고보 포함)이 242명이었다. 20대(2016. 5.30 ~ 2020.5.29) 국회 역시, 경기고 출신 의원은 13명으로 1위였다.
법조계 역시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 초대 소장 조규광(39회) 씨를 비롯해,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권성(56회)·송두환(63회)·목영준(70회)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이 있으며, 대법관으로는 이홍훈(61회)·김능환(66회)·박시환(68회)·안대희(69회) 등이 경기고의 위상을 드높였다. 검찰에서는 김준규 전 검찰총장(70회) 등 경기고 출신 다수가 법조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관계에서는 고건 전 서울시장, 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47회),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68회),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68회), 권오규 전 국무총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67회) 등이 학교의 이름을 빛냈다.
경기고 출신 경제·금융인은 한국 경제의 성장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50회), 손경식 CJ그룹 회장(54회),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60회),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64회),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66회), 최병민 깨끗한나라 회장(67회),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69회), 김호연 빙그레 회장(69회), 홍석준 보광창업투자 회장(69회) 등 수많은 동문이 경제계에 투신했다. 금융계에서는 68회가 한때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전상일 전 동양증권 부회장, 민유성 전 티스톤파트너스 회장, 하영구 전 씨티금융지주 겸 씨티은행장, 박중진 전 동양생명 부회장, 박석희 전 한화손해보험 사장 등이 활동하던 2011년이 특히 그랬다. 현재는 신창재(68회) 교보생명 대표이사 회장, 임승태 KDB생명 대표, 정건용 나이스그룹 회장 등 다수 동문이 활약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1세대 한국 현대건축가'이면서 지금은 문을 닫은 남산 힐튼호텔의 설계자인 김종성 서울건축 종합건축사사무소 명예대표(50회)도 경기고 출신이다. 또 2018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은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KEB하나은행 건물 '플레이스원(PLACE1)' 설계자도 경기고 출신 김찬중 건축가(84회)다.
문화·스포츠계에서는 대표적으로 방시혁 하이브 의장(87회)이 있다. 방 의장은 그룹 방탄소년단을 기획해 내놓은 인물로, 전 세계를 무대로 K-POP을 알리고 있다. 방 의장은 미국 빌보드 매거진 4월호 커버를 장식하기도 했는데, 2011년 '백지연의 인사이드 피플'에 출연해 "공부가 가장 쉬웠다"고 말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스포츠계에서는 LG트윈스 주장 오지환 선수가 있다. 2009년 LG 1차 1번으로 입단하여 데뷔 13년 만에 골든 글러브 수상의 영예를 안는 등 현재 LG 소속 유격수로 맹활약 하고 있다. 또 롯데 황재균, 두산 김강률 등 다수의 프로야구 선수를 배출했다.
박태환 수영선수(104회)도 동문이다. 박태환은 2008 베이징올림픽 자유형 400m 금메달, 자유형 200m 은메달, 2012 런던 올림픽 자유형 400m, 자유형 200m 각각 은메달, 2연속 아시안 게임 3관왕, 아시아신기록 등을 수립했다.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원로 배우 신구(52회)씨도 경기고 연극반 출신이다. 경기고 동문 극단 화동연우회는 지금도 연극반 출신 중견 연기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있다. 2008년에는 손학규, 고승덕(72회) 등 정치인들이 특별 출연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을 많이 배출한 경기고지만, 동문들은 학교 자랑은 크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종의 전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경기고 동문회 한 관계자는 "경기고 출신은 외부에 '경기고 출신 인물'에 대해 크게 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부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기고의 역사]
올해로 개교 123년을 맞은 경기고는 그 자체로 한국 중등교육의 역사다. 중학교에서 출발해 한성고·경성고보·제1고보·경기중을 변천하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으로 부상했다. 설립 당시 조선조 명문 거족들이 몰려 살던 홍현(紅峴·현 서울 종로구 화동)의 김옥균(金玉均)집터에 둥지를 틀었다. 교훈은 자유인 · 문화인 · 평화인이다. 1957년 졸업생부터 고교 입시 마지막 세대인 1976년 졸업생들까지는 10명 중 6명 이상이 서울대로 진학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박정희 정부가 1968년 중학교 입시를 폐지하고, 1974년에는 고교평준화를 단행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지금도 여전히 사회각계의 중추적인 인물을 배출하는 요람이다.
경기고 18대 총동문회장을 맡은 사람은 구자철 예스코홀딩스 회장(69회)이다. 3월 10일 발행한 경기동창회보에 따르면 '경기고 2023년도 정기총회'에서 참석회원들의 전원이 이의없이 박수로 승인했다. 구 회장은 2020년부터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수장으로도 활약하며, 유소년 육성과 프로 선발전 확대 등 골프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한영재 노루홀딩스 회장, 허일섭 GC녹십자 회장, 박용만 전 대한상의 회장 등이 동기다. 경기고 총동창회장 출신 기업인으로는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고 이수영 OCI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있다. 김승연 회장은 2021년 동창회 발전기금으로 1억원을 낼 정도로 학교에 대한 애정이 크다.
소종섭 트렌드&위켄드 매니징에디터 kumkang21@asiae.co.kr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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