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보수의 아성 서울 강남? 민정당 굴욕의 역사
1985년 총선 서울에서 강남구만 낙선
1988년 제13대 총선도 강남에서 고전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한국 정치에서 서울 강남구는 보수의 심장부로 인식된다. 보수정당 간판이라면 누가 출마해도 당선될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출신 태영호 후보가 출마하자 선거 결과에 관심이 쏠린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 보수정치의 메카에서 북한 공직자 출신을 뽑는 것은 내키지 않을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상대는 ‘로버트 김’ 동생으로 유명한 3선 경력의 김성곤 의원이었다. 태영호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후보가 고전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결과는 싱거웠다.
태영호 후보는 58.4%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여유 있게 당선됐다. 대한민국 보수정치의 명맥을 이어온 간판 정당 후보라면 강남에서 패배하는 게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강남은 역대 총선에서 보수 가치를 대변해온 정당 후보를 선택했을까.
1985년 2월 12일 제12대 총선은 한국 정치에서 강남에 관한 고정 관념을 깨뜨리는 선거였다. 신한민주당(신민당) 바람은 2·12 총선을 강타하면서 민심의 태풍으로 이어졌다.
2·12 총선이 소선거구제로 치러졌다면 신민당은 서울에서 싹쓸이에 가까운 결과를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당시 총선은 중대선거구제가 채택했다. 지역구(서울은 14개 선거구)별로 2명 당선자를 내는 구조였다.
당시 전두환 정부의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민정당)은 서울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2위까지 당선되는 당시 중대선거구제 덕분에 ‘거의 모든’ 서울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배출했다.
단 한 곳만이 민정당 지역구 의원을 용납하지 않았다. 전두환 당(黨)이 뚫지 못했던 그 지역이 바로 강남구다. 강남구(제13선거구)에서 1위는 35.8% 득표율을 올린 신민당 김형래 후보가 차지했다. 민주한국당(민한당) 이중재 후보는 29.7% 득표율로 2위를 기록했다.
강남구는 그렇게 김형래 의원과 이중재 의원을 지역구 대표자로 선출했다. 민정당은 이태섭 후보가 출마했지만, 득표율 24.6%에 그쳤다.
민정당의 강남구 패배는 신민당 돌풍의 영향도 있었지만, 경쟁자가 만만치 않은 것도 원인이었다. 민한당 이중재 의원은 6선 경력의 중진 정치인이다. 강남구에서 3선을 기록한 이종구 전 한나라당 의원은 이중재 의원의 아들이다.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5년 총선은 관권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집권 여당(민정당) 후보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치른 선거였다. 서울의 강남에서 3위로 처져서 지역구 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것은 민정당 입장에서는 굴욕이다.
2·12 총선 결과가 나온 지 6일 만인 1985년 2월 18일 노신영 국가안전기획부장을 총리 서리로 임명하는 등 12개 부처의 경질성 개각을 단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새 내각이 안정과 개혁을 바라는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라”는 대통령 메시지를 전했다.
관권선거와 부정선거 시비 속에서 신민당이 태풍을 일으킨 배경은 높은 투표율이다. 제12대 총선 당시 서울 투표율은 81.1%에 달했다. 2016년 제20대 총선의 서울 투표율은 59.8%, 2020년 제21대 총선 서울 투표율은 68.0% 수준이다. 1985년 제12대 총선의 서울 투표 열기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전두환 당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서울 강남구의 총선 결과는 제12대 총선에서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선거구제로 치른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구갑 지역구에 출마한 민정당 정희경 후보의 득표율은 17.9%에 머물렀다.
민정당 후보는 이때도 강남구에서 3위에 머무르며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1980년대 중후반 서울 강남은 보수정당에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거대한 산이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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