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지중해 중부에서 이주민 234명을 구조한 난민 구조선 '오션 바이킹'이 지난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툴롱항에 입항했다. 앞서 오션 바이킹은 이탈리아와 몰타가 입항을 거부하면서 3주 동안 지중해에서 표류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오션 바이킹 입항 허용 문제로 격렬하게 충돌했고 영국 BBC는 이 소식을 전하며 프랑스와 이탈리아 관계가 2019년 이후 최악이 됐다고 전했다.
BBC가 지적한 2019년 초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갈등도 따지고 보면 난민 수용 문제가 그 근원 중 하나였다.
2019년 1월 당시 이탈리아의 루이지 디마이오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은 유류세 인상에 대한 반발로 시작해 반정부 운동 성격으로 번진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지도부를 직접 만나 연대를 표했다. 프랑스 정부는 내정 간섭이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이탈리아 주재 대사를 소환하며 두 나라가 첨예하게 갈등했다. 2018년 이탈리아 총선 뒤 계속해서 충돌하던 프랑스와 이탈리아 정부 간 갈등이 절정에 달한 순간이었다.
2018년 이탈리아 총선에서 오성운동을 중심으로 한 포퓰리즘 정부가 탄생하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포퓰리즘 세력이 유럽에 한센병처럼 퍼지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새로 출범한 이탈리아 정부의 마테오 살비니 당시 부총리는 프랑스에 난민부터 받아들이라며 맞받았다. 난민 문제에 극도로 강경한 태도를 보인 살비니 부총리는 이후 마크롱 대통령과 지속적으로 난민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그러던 중 노란조끼 시위가 발생하자 이탈리아가 시위를 옹호하고 나서면서 내정 간섭 문제로까지 논란이 확산됐다.
두 나라의 갈등은 2019년 2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의 통화를 계기로 봉합됐다. 하지만 이번에 오션 바이킹 난민선 문제로 다시 불거졌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갈등은 유럽이 직면한 난민 문제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난민을 수용해야 하지만 사회ㆍ경제적 대가가 만만치 않아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면서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는 양상을 고스란히 노출한 것이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번 사태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구조선에 탑승한 난민에 대한 책임은 구조선이 등록된 국가가 져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그 선박은 해적선이 될 뿐"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된 오션 바이킹은 프랑스 해상 구호단체인 SOS 메디테라네가 임대한 선박인만큼 프랑스가 책임을 지라는 주장이다. 반면 제랄드 다르마냉 프랑스 내무부 장관은 오션 바이킹이 이탈리아의 탐색구조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가 입항을 허용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의 대규모 난민 사태의 원인은 이슬람 국가(IS)와 시리아 내전인데 이탈리아는 그리스와 함께 시리아 내전의 피해자들이 유럽으로 입국하는 주요 통로가 됐고 이러한 점에서 이탈리아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난민 문제를 다루는 입장에서 차이가 있다.
유럽 국가들은 이탈리아가 일단 난민선 입항을 허용하면 분산 수용을 하겠다고 합의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의 마테오 피안테도시 내무장관은 EU 13개국이 올해 이탈리아에 상륙한 이주민 가운데 8000명을 수용하기로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분산 수용된 이주민은 117명으로 이중 프랑스는 38명에 그쳤다고 꼬집었다.
유럽연합(EU)은 여러 차례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했지만 국가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마땅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5일 이민 문제는 해법이 없음을 이제 인정해야 할 때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이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치인의 주장은 유권자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실제 유럽에서는 증가하는 이민자로 인한 사회 문제로 불거지는 문제가 커지고 있다. 독일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관대한 이민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스웨덴에서는 최근 총기 사고가 급격히 증가했고 지난 9월 총선에서 반이민 정서를 자극한 극우 정당 스웨덴민주당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8년 만에 다시 보수 정권이 집권했다. 스웨덴민주당의 오케손 대표는 과거 한 토론에서 "무슬림 이민은 2차 세계대전 후 스웨덴의 가장 큰 외부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첫 여성 총리가 된 멜로니도 이탈리아에서 난민선 입항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북아프리카에서부터 이주민들의 출발을 막아야 한다며 강력한 이민 통제를 주장한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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