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가 양숙희 대표 인터뷰
무색, 무취, 무향, 무맛의 재료로 술을 빚지만, 매일 달큰한 향내가 흘러넘치는 곳이 있다. 바로, 전라남도 곡성에서 부드럽고 향기로운 토란 막걸리를 선보이고 있는 시향가다. 베풀 시(施), 향기 향(香), 집 가(家). ‘향기를 베푸는 집’이라는 뜻을 지닌 양조장 시향가의 양숙희 대표를 만났다.
시향가를 대표하는 술은 시향가 탁주, 말이야 막걸리야, 백세미인 등, 3년차 양조장이지만 라인업이 탄탄하다. 이 술들은 모두 양숙희 대표의 손끝에서 양조된다. 엄마도 며느리도 아내도 아닌, 오롯이 자신의 이름을 찾고 싶었다는 그는 오래도록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양조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대학에서 전통주 강의를 듣고 직접 술을 빚어 보며 느림의 미학에 매료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곳의 시그니처 제품인 시향가 탁주는 곡성을 대표하는 작물인 토란, 쌀, 누룩으로 만들어진다. 주재료인 쌀과 토란은 직접 농사를 짓기도 하고, 농협 미곡종합처리장과 계약재배 농가에서 구입하거나 공급받는다. 인공 감미료는 넣지 않는다. 한 모금 마시면 청포도나 참외의 향이 은은하게 감돌며 부드럽고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고소하고 알싸한 알토란 특유의 맛도 어렴풋이 느껴진다.
“사실 토란으로 계속해서 술을 빚을 생각은 없었어요. 조금만 얻어 한 번만 빚어 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40㎏짜리 토란 한 포대를 얻게 됐지 뭐예요. 그걸 쌀뜨물에 담가 껍질을 벗기고, 튀겨 보고, 깍뚝썰기 후 건조해 보기도 하고, 익혀서 짓이겨 보기도 하고··· 어려운 과정이었어요. 나중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토란은 술을 빚기에는 매우 까다로운 작물이다. 갈변이 심하고 금방 상해 버리기도 하며, 끈적거리는 식감을 가졌기 때문. 양 대표는 밤낮 할 것 없이 토란 술 제조에 매달렸다. 그러다 마침내 비법을 찾아냈다. 얇게 썰어 건조시킨 토란을 쌀뜨물에 불렸다가 헹궈 쌀과 함께 찐 뒤, 차게 식혀 밑술에 담아 보니 토란의 끈적거리는 식감이 잡힌 것. 현재 이 제조 방식은 특허로 등록돼 있다. 가공 비법을 발견한 뒤에는 맛의 변화를 막기 위해 발효실 온도를 조절해 가며 완성도를 높였다.
시향가 탁주는 양 대표의 첫 작품이자 시향가의 첫 번째 제품이다. 그래서 더 애정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는 건 쉽지 않았다. 마케팅이라는 벽에 부딪혔지만 온라인 플랫폼 등의 판로를 차근차근 개척해 나갔다. 2020년 8월에는 시향가 탁주가, 올해 6월에는 캔 막걸리인 ‘말이야 막걸리야’가 차례로 전라남도를 대표하는 술로 선정되며 이름을 더욱 널리 알렸다. 입소문을 타고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현재는 시향가 탁주 기준 월 1만 2천 병 가량을 생산할 정도로 생산 규모도 커졌다.
“페트병보다 좀 더 친환경적인 포장 방식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병과 캔에 막걸리를 담기 시작했어요.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젊은 감성을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죠. 환경을 생각하는 저희의 마음을 알아봐 주시는 분이 계시면 반갑고 감사해요.”
환경 친화적이고 예쁜 포장도 소비자들의 눈길을 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시향가의 제품은 페트병이 아닌 유리병이나 캔에 포장된다. 작은 양조장이지만 ESG 경영을 통해 세상에 좋은 영향을 전달하고 싶다는 양 대표의 바람이 투영된 것. 신제품은 분리배출이 가능한 수축필름을 씌운 유리병이나 알루미늄 캔에 담겨 나오고, 기존 제품 역시 수축필름을 사용한 유리병으로 전면 교체 중에 있다.
눈도 입도 즐거운 시향가 탁주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양 대표는 이 술과 잘 어울리는 안주로 망설임 없이 떡볶이를 꼽았다. 토란이 들어가 위에 부담이 덜하며, 목넘김이 깔끔하고 부드러워 빨간 양념과 찰떡궁합을 자랑한다고. 시향가 탁주처럼 산미가 없는 하얀 막걸리와 빨간 안주는 눈이 질끈 감기는 완벽한 조합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토란 막걸리를 만들었던 열정과 집념으로, 시향가에선 새 제품 론칭을 위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3년간의 연구 끝에 곡성 머스크 멜론을 이용한 스파클링 막걸리 ‘우주멜론미’를 선보였고, 가을이 오기 전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두 가지 제품을 추가로 준비하고 있다.
시향가의 제품들을 외국에 수출하고, 한국 술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는 양 대표는 현재 매출액 100억 달성과 상장을 위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목표 달성 이후엔 작은 가양주 가게를 운영하며 행복한 노후를 맞는 것의 그의 꿈이다. 시향가의 향기로운 내음이 더 멀리 퍼져나가 그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시향가
김보미 인턴기자 jany69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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