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 운전면허 관리 미흡...자진 신고에 의존
정신장애 둘러싼 사회적 편견, 인권침해라는 지적도
전문가 "환자 상태 체크 가능한 의료망 시스템 갖춰야"
[아시아경제 김서현 기자] 최근 한 정신질환자가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낸 소식이 알려지면서 법을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일고 있다. 관련 법으로 규제를 하고 있지만, 환자가 스스로 자진 신고를 하는 것 외에 운전자의 병력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 사실상 법 사각지대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는 일종의 안전망을 만들어, 재발방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달 초 경남 창원에서 한 정신질환자가 "(타 운전자가) 전기를 쐈다"며 차를 들이받고, 차를 뒤쫓아와 유리창을 헬멧으로 가격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또 앞서 지난 2019년에도 정신질환자의 고속도로 역주행으로 어린이·예비 신부를 비롯한 3명이 숨졌다. 당시 운전자인 박모(20)씨는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박씨의 아내는 "박 씨가 최근 약을 먹지 않아서 위험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질환자 운전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 제도적 변화는 이뤄지지 않은 채 멈춰 있다. 도로교통법 제82조는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일으킬 수 있는 정신질환자 또는 뇌전증 환자'는 운전면허를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면허시험을 응시할 때 응시자가 자신의 질병을 자진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환자가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지 않으면 면허 취득 이후 운전자의 정신질환 유무를 가려내기 쉽지 않다.
또 정신질환자 가운데 6개월 이상 입원 경력이 있는 경우만 수시적성검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따라서 장기입원 치료 기록이 없다면 운전을 하기 어려운 중증질환자도 아무런 제재 없이 운전면허를 갱신할 수 있는 구조다.
수시적성검사 대상자로 지정돼도 운전자의 인권 문제 때문에 강제로 검사를 진행할 수 없다. 지난 2019년 역주행 사고를 낸 박씨의 경우 지난해 9월 수시적성검사 대상으로 편입됐지만 적성검사에 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실상 당사자가 자신의 병력을 밝히지 않으면 면허 취득 혹은 적성검사를 제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로교통공단 면허민원처 관계자는 "시스템 공백에 동감한다"며 "현재 가족, 의사, 경찰 등을 포함한 제 3자 연계 시스템이 법제화 과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전적으로 환자 본인에게만 맡겨진 신고 의무를 분산시켜,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도 검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어 "현재 운전적성판정위원회을 꾸려 더 효과적으로 운전면허 여부를 판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메뉴얼을 보완해서 이 또한 제도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신질환자의 면허 제한이 인권침해라는 지적도 있다. 이항규 한국정신장애인협회장은 "(정신질환자의 면허 규제가) 다른 운전자와 비교했을 때 차별적인 조치라고 생각한다"며 "일상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는 환자들도 많다. 정신장애를 성급히 일반화하는 사회 인식의 문제가 명백히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체장애인은 오히려 맞춤형 형태로 운전이 지원된다. 붉은색과 푸른색을 구분하지 못한 색맹마저 2종 운전이 허용되는데, 어째서 유독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강한 규제가 이뤄지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한편 전문가는 IT 전산망 시스템을 통해 환자가 의사로부터 상태를 확인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김영희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IT 기술이 매우 발전돼 있다는 점과, 의료망의 보안이 굉장히 철저하다는 점을 접목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보안이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조건으로, 정신건강관련 의료전산망과 운전면허관리 관련 행정전산망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도로교통공단이 의료망을 형성해서 환자가 개인의 상태를 의사로부터 체크 받을 수 있는 여건을 형성해야 한다"며 "안전망이 형성되면 정신질환자 낙인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서현 기자 ssn359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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