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두고 읽지 않는 '북호더' 증가
성인 10명 중 4명 "1년간 책 1권도 안 읽어"
전문가 "우울감·스트레스 등 심리적 요인 영향"
[아시아경제 김가연 기자] "재밌어 보이는 책이 워낙 많으니까 계속 사긴 하는데, 정작 읽은 책은 없네요."
직장인 A(27) 씨는 온라인 서점을 통해 매달 20여만 원 상당의 책을 구입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제대로 읽는 책은 손에 꼽을 정도다.
A 씨는 "온라인 서점을 둘러보는 게 취미"라면서 "둘러보다가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있으면 구매하는 편이다 2~3주에 한 번씩 구매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책은 계속 사고는 있지만 책장에 꽂아둔 채 방치하고 있다"면서 "읽고 싶어서 사는 건데 일상생활에서 여유가 안 나니까 아무래도 손이 잘 안 간다. 이것 때문에 조금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최근 스스로를 '북호더'라고 지칭하는 현대인이 증가하고 있다. 북호더란 '책'을 의미하는 book과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일종의 강박 장애를 겪는 사람', '축적가'라는 뜻의 hoarder의 조어로, 책을 구입한 뒤 쌓아두기만 하고 읽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같은 현상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는 북호더와 같은 의미를 가진 츤도쿠(積ん?)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츤도쿠란 '읽다'를 의미하는 도쿠와 '쌓다'는 의미의 '츠무'에서 파생된 '츤'의 합성어로 읽을거리를 쌓아두는 사람을 가리킨다.
츤도쿠는 최근 영미권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스타그램에 츤도쿠의 영문 표기인 'tsundoku'를 검색하면 수만 건의 게시물이 나온다. 앤드루 거슬 런던대 교수는 지난해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 용어는 일본 메이지 시대인 1879년 당시 문헌에도 등장한다"면서 그 이전부터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국내 온라인 서적 구매 거래액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2월 통계청 '2019년 연간 온라인쇼핑 동향'에 따르면 2018년 온라인 서적 구매 거래액은 1조8845억 원으로 파악됐다. 이는 1조8211억 원이었던 전년 거래액 대비 3.5% 증가한 수치다. 2017년에는 1조6819억 원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연간 독서율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 '2017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4명은 "일반 도서(교과서, 학습참고서, 수험서, 잡지, 만화 제외) 제외하면 1권도 읽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정부가 독서 실태 조사에 나선 1994년 이후 최저치다.
독서가 취미라는 직장인 B(30) 씨는 "입사 이후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서점에 가거나 서적을 구입했다"면서도 "그렇게 산 책들이 그대로 책장에 꽂혀만 있다. 몇 년째 읽지도 않으면서 책을 지속해서 사고 있다"고 말했다.
B 씨는 "어느 순간부터 책을 못 읽게 된 것 같다. 시간이 없는 것도 이유겠지만, 저는 무기력증이 심해져서 여유시간이 생겨도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안 하거나 잠만 잔다"며 "이럴 거면 책을 안 사야 하는데 또 습관으로 굳어져 계속 사게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현상이 우울증·번아웃 증후군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스트레스나 우울감이 지속하면서 무기력증이 심화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다.
전문가는 독서 등 집중력이 요구되는 취미 활동의 경우 심리적 요인들로 방해받기가 쉽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무기력하다든지 우울, 좌절 등의 심리 상태가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이런 사람들의 경우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 신간이 나오면 구입은 하지만 다 못 읽게 된다. 그러면 '이렇게 사놓고 못 읽는구나'하며 자괴감이 들고,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서 "그런 생각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에 악순환을 끊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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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심리와 신체는 밀접하게 연결이 돼 있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활동을 안 하면 심리적으로 우울해지고, 또 신체적으로 활동을 더 안 하게 된다"면서 "한 가지에 대해 좌절한 뒤 여러 가지를 같이 포기해버리는 것을 '과잉 일반화'라고 한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는 전혀 다른 활동이나 신체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김가연 기자 katekim2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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