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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없으면 강간죄" 60년 만에 요건 바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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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제정, 폭행·협박 근거 판단‥피해자 71.4% 직접적 없어
13일 국회서 '개정 토론회'…심상정 남인순 김삼화 의원 주최
'동의 여부' 세계적 추세…UN "배우자 강간조 범죄화" 권고

"동의 없으면 강간죄" 60년 만에 요건 바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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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부애리 기자] 1953년 제정 후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강간죄 구성 요건'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가 다시 물꼬를 튼다. 핵심은 '폭행 또는 협박'을 근거로 판단하는 현행 기준을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것이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 이후 이 같은 논의가 활발해졌고 관련 법안도 대거 제출되면서, 여성계를 중심으로 제기돼 온 요구가 60년만에 빛을 보게 될지 초미의 관심으로 떠올랐다.


8일 국회에 따르면 오는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비롯해 권미혁·남인순·백혜련·정축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 등 공동 주최로 20대 국회 강간죄 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린다. 강간죄 구성 요건 개정안은 여야 할 것 없이 10명에 달하는 의원들이 발의해놓은 상태다. 자유한국당이 4명으로 가장 많고 더불어민주당 3명, 바른미래당ㆍ정의당·민주평화당 각 1명씩이다.


심 정의당 대표는 "미투가 한국 사회를 관통한 후 초당적이고 전 국민의 공감대 아래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마지막 정기 국회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까지 법안 모두 계류돼 있는 상태"라며 "판단 기준을 폭행 또는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꾸는 것만이라도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간죄 개정은 이르면 다음주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에서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법사위 여당 간사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방향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지만 의원마다 처벌 수위에 대한 이견이 있어 조율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동의 없으면 강간죄" 60년 만에 요건 바뀌나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현재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에 의하면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는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 성폭력 피해가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많은 성폭력 피해가 폭행 또는 협박이 없는 상황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전국 66개 성폭력상담소에서 접수된 강간 상담 사례를 살펴본 결과, 피해자 1030명 중 71.4%(735명)이 폭력과 협박 없이 피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더욱이 현행법 아래에선 피해자가 얼마나 심한 폭행이나 협박을 당했는지 스스로 증명해야 범죄행위가 입증된다는 점도 문제로 꼽혀왔다. 김혜정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활동가는 "그루밍(Grooming·길들이기) 수법과 같은 성폭력 범죄도 등장하면서, 기존의 강간죄 구성 요건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권력 등 위력에 의한 성폭력 범죄를 제대로 처벌하기 위해 법개정은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여성계는 이미 2007년부터 여성인권법연대를 만들어 형법 개정을 요구해왔다.


'동의 여부'에 따라 강간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건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독일·스웨덴·영국·캐나다 등이 동의 여부를 성폭력 구성 요건으로 규정한다. 형식적으로는 동의가 있었으나 폭행, 협박, 위계·위력, 연령이나 장애, 음주, 약물 복용 등으로 인한 피해자의 취약 상태를 이용한 경우도 실질적 동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성폭력으로 처벌하는 법 체계도 마련해두고 있다.



유엔(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지난해 한국 정부의 성평등 정책 전반에 대한 심의를 진행한 후 '젠더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 분야 7가지 권고 내용 중 첫 번째로 "형법 제297조를 개정해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부족을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하고 특히 배우자 강간을 범죄화 할 것"을 권고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우리는 UN의 권고를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형법 제297조의 개정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성 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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