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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56] 아폴로 상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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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56] 아폴로 상 앞에서 윤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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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잘 생긴 남자는? 이런 질문은 우문일까요? 행인이 되어 떠돌다 보면 온갖 사람을 만날 수 있지요. 그중엔 사람 형상을 한 조각품도 있습니다. 조각품은 사람과 달리 생로병사를 겪지 않지요. 태어날 때부터 극적인 상태입니다. 힘, 사랑, 고통, 아름다움…. 가장 잘 생긴 남자란 결국 가장 잘 생긴 상태, 즉 남성미가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을 '얼려버린' 것입니다. '조각 같은 미모'라는 말. '잘생긴 외모' 외에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변치 않는 아름다움'의 뜻도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은 신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신은 인간을 초월하는 다양한 힘이 있으면서도 인간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람과 닮은꼴' 캐릭터이지요. '나도 신이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신을 사람 모양으로 탄생시켰습니다. '가장 잘생긴 남자' 역시 신 중에서 나오게 마련입니다. 헌데 신은 실체가 없으니 그림이나 조각처럼 이미지로 만들어야 합니다. 신화가 예술 발달의 주요한 원천이 되는 이유입니다. 이야기가 먼저 상상하면 이미지가 이를 구체화하는 방식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가 어찌 있겠습니까. 잘생긴 남자 신의 이미지를 두고 말장난할 뿐이지요. 예술은 사실(fact)을 기록하지 않는 대신 최상의 형태미를 꿈으로 보여줍니다. 로마 시내의 바티칸 팔각정원에 가면 그 꿈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지요. 역대 교황들이 그리스 로마 조각들을 수집하고 보호한 덕에 정원의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명품들. 그중에서 아폴로상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아폴로는 로마식 이름. 그리스에서는 아폴론이라 부릅니다. 그는 음악과 지혜와 궁술의 신이지요. 앞으로 뻗은 조각상의 왼손에 활이 있었다고 추정합니다. 활시위를 당기고 난 뒤 날아가는 화살을 바라보는 표정인데, 정작 조각상의 활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활이 있던 빈자리. 누구를 겨누던 시위인지 상상의 즐거움은 관객의 몫입니다. 델포이에서 아폴로가 쏜 화살을 맞고 죽은 거대한 뱀 피톤(Python)이 아닐까요? 예술 창작에도 인문학이 필요하듯 이해와 감상에도 인문학이 필요합니다.


[윤재웅의 행인일기 56] 아폴로 상 앞에서

또한 아폴로는 태양의 신. 엄정한 기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규율과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지요. 열정과 도취의 신 디오니소스가 자유와 일탈을 추구할 때 그 반대편에 아폴로가 있다고 주장한 이는 독일의 스물여덟 살 청년 니체였습니다. 그의 '비극의 탄생(1872)'은 고대 그리스 문화를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나누지요. 이것이 그리스 비극의 배후에 깔려 있는 중요한 원리이며 서양 문화의 심층적 구조를 설명하는 모형이라고 그는 역설합니다. 아폴로의 '의지와 표상', 디오니소스의 '도취와 꿈'이라는 니체의 대립쌍 개념은 이후 서양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기원이 돼 발전해나갔습니다. 말인즉 아폴로는 서양 고전주의의 원형인 것입니다.


규율과 균형과 조화의 신 아폴로. 그 이념답게 조각상의 몸 또한 비례적으로 아름답습니다. 아폴로상의 인체 비례는 수학과 해부학적으로 완벽해서 '발바닥에서 발목 복사뼈까지의 길이는 신장의 24분의 1, 손바닥은 얼굴 길이와 같고 가슴의 너비는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키의 4분의 1'이라는 식으로 계산됩니다. 그중에 압권은 황금비율의 비밀. 전체 조각상의 폭과 높이, 몸통과 다리 길이가 1:1.618이라고 하네요. 인간이 가장 아름답게 느끼는 비율에 가깝습니다. 아름다운 남자의 육체에도 미의 절대 기준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이런 미남자라면 모든 여인의 마음을 빼앗을 만도 한데, 한 여자의 마음만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강의 신 페네이오스의 딸 다프네. 아폴로는 거대한 뱀 피톤을 죽인 후 의기양양해져서 사랑의 활을 메고 다니던 어린 큐피드를 무시하지요. '꼬마야, 활은 어린아이가 쏘는 게 아니란다.' '당신이 나보다 활을 잘 쏠지는 몰라도 나는 당신을 맞힐 수 있답니다.' 큐피드에게 황금의 화살을 맞는 아폴로. 눈에 사랑의 콩깍지가 씌어 다프네를 사랑하게 됩니다. 아폴로가 좋아하는 다프네에게는 납화살을 날리는 큐피드. 다프네는 자신을 줄기차게 따라다니는 아폴로를 보면 기겁을 하며 달아납니다.


쫓고 쫓기는 두 연인의 운명은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함으로써 막을 내리지요. 나무로 변한 사랑하는 여인의 몸을 어루만지는 태양의 신. 눈물 어린 시를 읊습니다. '내 아내가 될 수 없는 그대여. 대신 나의 나무가 되었구려. 이제 내 머리에는 월계관이 오르고, 내 하프와 화살통에는 그대의 가지를 꽂아 장식하리.'


바티칸 팔각정원의 아폴로상. 손가락이 다 날아간 오른손엔 월계수 가지가 들려 있지 않았을까요? 월계관은 승리와 권세의 상징. 그러나 상남자 아폴로도 한 여인의 마음만은 끝내 얻지 못하는군요. 아폴로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신화 명언 사전'을 잘 봐야 합니다. '사랑의 신에게 밉보이면 뒤늦게 후회한들 소용없다!' 심장에 새겨야 할 명언입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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