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인 가구 증가 인구 구조 변화…전체가구 절반 이상
한달 평균외식 15회…집에서도 편의점 도시락 등 가정간편식 이용
유연하게 끼니를 해결하려는 '편의경제' 본격화
껑충 뛴 식재료 가격…해먹는 것보다 사먹는 것이 저렴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 #결혼 5년차 맞벌이 주부인 고현수(39·여)씨 시댁으로부터 정기적으로 포장 김치를 받는다. 주중에는 부부가 모두 늦게 퇴근하기 때문에 집밥을 먹을 기회가 없는데다, 주말에도 대부분 외식이나 배달 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하지만 시어머니는 수년째 포장 김치를 사서 보내고 있다. 고씨는 "시댁에서도 김치를 안 담그기 때문에 시중에 판매되는 J브랜드 김치를 사서 택배로 보내주신다"면서 "서울에서 사 먹을 수 있지만 김치를 챙겨주고 싶은 시어머니의 마음 때문에 그냥 받고있다"고 전했다.
#싱글족인 30대 직장인 김미연(37·여)씨는 집에 가스레인지가 없다. 가전제품이 빌트인으로 갖춰진 오피스텔에 거주하다 지난해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가스레인지를 구입하지 않았지만, 1년간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다. 주중 삼시세끼는 외식으로 해결하고 주말에도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데워먹을 수 있는 가정간편식(HMR)으로 끼니를 때운다. 라면을 끓여 먹기 위해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구입했지만, 라면마저도 최근에는 컵라면을 선호하는 탓에 전기포트를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 김씨는 "집에서 음식을 거의 안해 먹기 때문에 가스레인지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했다.
'집밥'이 사라지고 있다. 따끈따끈한 쌀밥에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가 각 가정의 일상적인 저녁 풍경이었지만, 최근 밥을 짓거나요리하는 일은 특별한 날의 이벤트가 됐다. 1인 가구는 물론, 다가구 가정도 대부분이 맞벌이인 만큼 음식을 만들 시간이 부족하거나 간편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HMR과 배달음식, 외식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커졌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즉석섭취식품(도시락), 즉석조리식품(레토르트), 신선편의식품 등 국내 HMR 시장은 최근 5년간 연평균 17% 성장세를 보이며 지난해 3조원을 돌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는 4조원대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1·2인 가구 중심의 인구 구조 변화와 맞벌이 가구·여성 사회진출 증가로 HMR을 이용해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하려는 트랜드가 자리잡은 덕분이다. 2005년 전체 가구수의 42.2%였던 1·2인 가구수는 2016년 54.1%로 늘었다. 2025년에는 62%를 넘어설 전망이다. CJ제일제당, 오뚜기, 동원, 대상, 풀무원 등 대표 식품기업 외에도 이마트 피코크, 신세계푸드 올반, 농심 쿡탕, 한국야쿠르트 잇츠온, 헬로 빙그레 등 유통식품업체와 편의점 자체브랜드(PB)제품까지 간편식 개발에 가세했다. 이는 HMR의 맛과 품질을 진일보 시켜 관련 시장은 키운 요인이 됐다.
특히 편의점 도시락의 경우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주머니가 가벼운 계층의 한끼를 해결해주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편의점 CU는 최근 5년간 도시락과 컵라면 매출을 비교 분석한 결과 2014년과 2015년 도시락과 컵라면의 매출 비중은 3대 7 정도로 컵라면이 압도적으로 높은 매출을 보였지만, 2016년 편의점 도시락 49.1%, 컵라면 50.9%로 그 격차가 단숨에 좁혀졌고, 지난해 도시락 52.1%, 컵라면 47.9%로 처음으로 도시락이 컵라면 매출을 앞섰다.
특히, 사무실이 밀집한 오피스가와 공장이 모여있는 산업지대의 도시락 매출신장률은 21.3%로 1분기 평균 신장률 보다 약 3%P 높게 나타났으며, 점심 시간인 11~13시 사이 발생한 매출이 전체 매출의 22.6% 차지했다.
이와 같은 편의점 도시락의 인기는 성인남녀 하루 평균 외식비(8300원)의 절반도 안되는 비용으로 경제적 부담이 적을 뿐만 아니라, 양과 질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개선되면서 든든한 한 끼 식사로 편의점 도시락을 선택하는 고객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잦아진 외식도 집밥 위주의 식(食)문화를 바꾸게 한 요인이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2016년 소비자 30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외식빈도는 월평균 15.0회에 달했다. 방문 외식시 주로 이용하는 메뉴는 한식이었으며, 배달외식을 이용하는 경우는 치킨류, 포장 외식은 패스트푸드의 이용 빈도가 가장 높았다.
이처럼 식문화에 큰 변화가 온 것은 '편의 경제' 시대가 본격화되면서라는 분석이다. 직접 식재료를 구입해 조리하고 식사하는 기존 가정 식문화가 최근 각자의 상황 및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끼니를 해결하는 행태로 변화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간편하면서도 맛있고 배부르게’ 식사하려는 소비자들의 니즈에서 출현한 것으로 분석된다.
광고대행사 이노션이 지난해 공개한 '식문화 편의경제 시대'에 대한 트렌드 분석 보고서를 보면 간편식은 식문화 행태 관련 소셜 데이터 중 9396건을 차지했다. 소비자들이 간편식을 선호하는 이유로 편리성 및 가성비(46%)가 가장 많이 언급된 가운데 건강과 영양(37%), 새로운 경험 및 성취감(10%)에 대한 가치 또한 높게 사는 것으로 파악됐다.
음식 배달·주문·결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모바일 간편 서비스가 활성화된 점도 편의경제를 토대로 식문화 트랜드가 급격히 바꾸는데 일조했다. ‘식사 + 편의’ 관련 소셜 데이터를 살펴본 바 ‘배달’(5596건), ‘모바일’(5431건), ‘결제’(3955건), ‘주문’(3198건), ‘배달앱’(2225건) 등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수진 이노션 디지털 커맨드 센터장은 “최근 식문화 트렌드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편의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편의경제’ 트렌드는 식품 영역을 넘어 타 산업으로도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싸진 식재료도 집에서 요리해서 먹는 일을 기피하게 만들었다. 밥상물가와 직결되는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해먹는 것보다 사먹는 것이 더 저렴해진 탓이다. 통계청이 내놓은 지난달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감자(76.9%), 쌀(30.2%) 등 주요 농산물 가격이 전년과 비교해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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