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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책상에선 현장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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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힘을 적게 들여 해결할 길이 분명히 있는데 잘못된 선택으로 쓸데없이 힘만 쓴다는 뜻이다. 새 정부의 최근 행보를 보면 이 말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무리수를 던져 놓고 해결에 쩔쩔매는데, 그 해결 방법조차도 썩 똑똑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18일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소상공인 지원대책 홍보를 위해 현장방문을 한 것도 그리 똑똑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그는 이날 한 김밥집을 찾아 종업원에게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ㆍ카드수수료 인하ㆍ상가임대료 인상율 인하 등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충격을 줄이기 위해 내놓은 대책을 하나하나 설명했지만 종업원은 "바쁘다"며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의 반응이 대다수 소상공인이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느끼고 있는 솔직한 심경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 성장'의 열쇠다. 이 때문에 큰 폭으로 최저임금을 올린 맥락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로 인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큰 소상공인과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인 아르바이트생들의 목소리를 사전에 충분히 들어봤어야 했다. 뒤늦게 장관들과 청와대 인사들이 줄줄이 현장방문에 나선 것은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이 전형적인 '책상머리 정책'이었음을 보여준다.


새 정부가 탁상행정으로 욕을 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교육부는 올 3월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영어수업을 금지하는 정책을 추진하려다 반대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으며 결정을 1년 보류했다. 영유아기에 과도하게 영어수업을 받는 것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이번 정책의 논리지만, 학부모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아이들이 영어에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또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는 그대로 유지한 채 영ㆍ유아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없앨 경우 고가의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고소득층 자녀들만 유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교육 현실을 모르고 이상만 좇다가 헛발질을 한 것이다.

2030세대의 분노를 불러온 박상기 법무부장관의 '가상통화 거래소 폐쇄' 발언도 시장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탁상행정이 빚은 결과다. 박 장관의 폐쇄 발언 후 거래소에서 각 통화들은 30~40%씩 급락하며 막대한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발생했다. 정부는 투자자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 같은 대책을 발표했다고 설명하지만, 오히려 정부 발표가 피해의 주 원인이 되는 아이러니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상을 좇는 것도 좋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도 마땅하다. 단, 거기에 눈이 멀어 가장 중요한 일반 국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면 아무리 좋고 훌륭한 이상이라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노무현 정부 시즌2'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그저 흘려 들어서만은 안 된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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