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4차 사법파동' 때 靑 민정수석…대법원장 파워 실감
대법관 경험 없는 김명수 후보자 발탁으로 진보 개편 신호탄
임명되면 사법 사상 세 번째 비(非) 대법관 출신 대법원장
문 대통령 재임 중 대법관 10명, 헌재 재판관 8명 교체
사법권력 ‘양대축’ 대법원·헌재, 보수에서 진보로 색채 바뀔 듯
[아시아경제 황진영 기자]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첫 대법관 제청을 앞둔 2003년 8월 당시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개혁과 대법관 다양성을 상징하는 인사가 대법관으로 제청돼야 한다는 의견을 대법원 측에 전달했다. 당시 법조계와 젊은 법관들의 요구이자 사회적 여론이기도 했다. 하지만 윤관 대법원장이 이런 의견을 무시하고 기존의 연공서열 방식으로 후보를 제청하자 서열과 기수 위주의 대법관 제청에 반대한 판사 160여 명이 연판장에 서명하는 이른바 ‘4차 사법파동’이 발생했다. 젊은 판사들의 신망이 두터웠던 박시환 서울북부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의 일방적인 대법관 제청에 항의하면서 사표를 던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법관 경험이 없는 진보성향의 김명수(58) 춘천지방법원장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4차 사법파동을 겪으면서 대법원장의 ‘파워’를 실감한 것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관 제청권과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의 지명권을 가진 대법원장은 사법권력의 양대 축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인적 지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문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대법관 10명과 헌법재판관 8명(문 대통령이 헌재 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이유정 변호사 포함)을 임명할 수 있다.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으로 임명되면 신임 대법관 10명 전원을 문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게 돼 김 후보자와 비슷한 성향의 법조인들이 대법원의 주류를 형성할 수 있다. 헌재 재판관의 경우도 야당 추천 몫인 1명을 제외하면 7명을 문 대통령과 대법원장, 여당이 지명하거나 추천하게 된다. 헌재 역시 문 대통령 임기 동안 보수에서 진보로 색채가 완전히 바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당초 후임 대법원장 후보로 우리법연구회 초대 회장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때 대법관에 임명된 박시환 전 대법관을 유력하게 검토했다. 하지만 박 전 대법관이 고사하자 현직 법원장급 판사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성향으로 알려진 김 후보자를 파격적으로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는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 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김 후보자는 부산 출신으로 부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 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와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일선에서 재판 업무만 담당하다 지난해 2월 법원 인사 때 춘천지방법원장으로 임명돼 법원 행정 업무를 처음 맡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경험 부족을 지적하기도 한다. 김 후보자는 현 양승태 대법원장(사시 12회)과는 나이는 11살, 사법시험 기수는 13회 차이가 난다. 현 대법관 13명 중 9명이 김 후보자 보다 사법시험에 먼저 합격한 선배들이다.
대법관 경력이 없는 지방법원장이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것은 법원이 체계를 갖춘 이후에는 전례를 찾기 힘든 파격 인사이다. 역대 대법원장 13명 중 대법관(대법원 판사 포함) 경험 없이 대법원장에 임명된 것은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을 제외하면 3, 4대 조진만 대법원장이 유일하다. 이승만 정권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조 전 대법원장은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직후인 1961년 7월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김 후보자에 대해 “법관 재임 기간 동안 재판 업무만을 담당하면서 민사 실무 개요를 집필하기도 한 민사법 정통 전문 법관”이라면서 “춘천지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법관 독립에 관한 확고한 소신을 갖고 사법 행정의 민주화를 선도해 실행했으며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법부를 구현함으로써 국민에 대한 봉사와 신뢰를 증진할 적임자”라고 밝혔다.
황진영 기자 young@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