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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휴가(休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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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상도 정치부 차장] '철의 여제'로 불리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올해도 어김없이 남편인 자우어와 함께 휴식을 위해 이탈리아 북부의 산악 휴양지인 남(南)티롤을 찾았다. 무려 9년째다.


하지만 "유럽에서 가장 바쁘다"던 이 여장부(女丈夫)는 집권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테러ㆍ디젤ㆍ난민 사태 등 3대 악재가 겹치면서 네 번째 연임이 걸린 다음 달 총선에도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메르켈에게 여름휴가는 가시방석이나 다름없었을 듯하다.

이를 바라보는 현지 언론의 태도는 유연했다. 악명 높은 유력지 '빌트(Bild)'도 휴가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휘발성이 큰 악재에 둘러싸인 총리가 휴가지에서 과연 어떤 정국 구상을 갖고 돌아왔을 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최근 독일 정국은 위기의 연속이다. 연례 조사에서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낀 국민은 62%에 불과했다. 이는 수년째 극성을 부려온 난민 사태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유럽연합(EU)의 난민 수용을 주도했던 장본인은 다름 아닌 메르켈이다. 그는 이 같은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인 문재인 대통령도 이달 초까지 6박7일(공식연차 4박5일)간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이는 민감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겹치면서 논란을 키웠다. 야당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코리아 패싱'은 온통 문 대통령 탓이 됐다.


과거 우리 대통령들도 휴가 복(福)이 너무 없었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이듬해인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 여파로 관저에서 시간을 보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년차인 2004년 탄핵 사태로 직무정지를 당하면서 휴가를 아예 포기했다. 2006년에는 태풍 탓에, 2007년에는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으로 다시 여름휴가를 떠나지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취임 첫해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수습 때문에, 임기 말에는 세 아들의 비리 연루로 조용히 관저에서 시간을 보냈다.


휴가는 면제, 해방을 뜻하는 라틴어 바카시오(vacatio)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노르만 왕조의 시조인 정복왕 윌리엄이 노르망디 포도 수확을 돕기 위해 군인들에게 긴 휴가를 주었던 관습이 시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휴가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무상무념(無想無念)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대통령의 휴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최고 지도자는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닐 것이다. 관저를 벗어나 보다 큰 정국 구상을 위한 기회를 갖는 것으로 보는 건 어떨까. 여기에는 쉴 때는 쉬고 구상도 아주 잘해야 한다는 과제도 따라붙는다. 박 전 대통령이 취임 첫 해 휴가 직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임명하는 실책을 범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혹시 국정농단을 막을 길이 열리진 않았을까.


잇따른 인사(人事) 논란마다 슬쩍 책임을 피해가는 최근 청와대의 행태를 바라보면서, 취임 100일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의 첫 휴가에 기대를 걸어본다. 안팎으로 어지러운 난국을 돌파할 전기를 마련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푹 쉬다 온 문 대통령이 또다시 인사에서 악수(惡手)를 둔다면 파장은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상도 정치부 차장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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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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