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원다라 기자]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하면서 삼성전자가 '경영 공백'의 장기화를 토로하고 있다. 반도체 등 일부 산업의 특성상 적기에 이뤄져야 할 대규모 투자가 차질을 빚을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과 관련한 대규모 인수합병(M%A)도 사실상 멈춰섰다.
재계 관계자는 8일 "1심 선고에 따라 삼성전자의 경영 공백이 예상보다 오래 이어질 수 있다"며 "삼성전자가 대한민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와 재계 일각에서는 피의자 신문이 끝난 만큼 법원이 이 부회장의 구금 상태를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소한의 경영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여론이 좋지 않아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올해 10대 그룹 제조업체의 수출 비중을 살펴보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제조 계열사의 수출 비중은 33%로 국내 기업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4년 만에 인텔을 제치고 세계 반도체 시장 1위 등극이라는 쾌거도 이뤘다. 이같은 성과는 반도체 사업 시작 이후 꾸준히 진행해온 선제적 투자 덕분이라는 게 재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 부회장이 구금돼 경영공백이 이어진 지난 6개월간 삼성전자는 사실상 모든 투자 계획이 멈춰서고 말았다. 당초 이 부회장은 지난해 말 미국 전장기업 하만 인수 이후 자율주행, 인공지능 관련 기업들을 추가로 인수해 5년 안에 자율주행 플랫폼을 내 놓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경영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전면 보류 또는 중단됐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인수합병 대상으로 삼았던 기업들이 경쟁사로 넘어가는 일도 있었다. 각 부문별 최고경영진이 이미 계획된 사업은 꾸려가고 있지만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투자나 신사업 개척 등 핵심적인 경영 판단은 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은 반도체 투자위원회에서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물론, M&A와 사장급 인사들의 인재 영입 등 자신의 글로벌 인맥을 사업에 최대한 활용해왔다"면서 "삼성전자는 선대(고 이병철 회장) 부터 지금까지 회사의 존망을 우려해야 할 정도의 대규모 투자와 신사업 개척을 위해 글로벌 회사가 됐는데 이 같은 승리 공식이 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반도체가 무너지고 신사업 발굴에 실패할 경우 전자 산업의 경쟁력도 심각하게 훼손될 것으로 우려된다. 스마트폰, TV 등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 대부분은 반도체와 함께 성장을 해왔다. 세트 상품의 비수기에는 반도체가 돈을 벌고 반도체가 비수기일 때는 세트 사업에서 돈을 버는 사업포트폴리오가 진가를 발휘해왔다. 이런 구조에서 반도체가 투자 기회를 놓쳐 경쟁력을 잃는다면 전체 포트폴리오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의 장기 구금으로 인해 신인도 하락도 불가피하다. 이 부회장은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청받고도 가지 못했고 글로벌 기업 수장들이 모이는 다보스 포럼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과)는 "전문 경영인 체제가 잘 작동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오너십이 빠진 삼성의) 의사 결정 시스템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는지, 지속가능한 상태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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