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금지 법률 전혀 없어…몰카 개념 정의부터 필요
지난달 31일 소셜커머스 업체 쿠팡에서는 ‘오늘의 추천’ 생활용품 카테고리 1위 제품으로 안경형 몰카를 소개했다. 제품 설명란에는 ‘주변 시선 걱정 없이 안경만 쓰면 아무도 모르게, 눈치채지 못하게 안경에 내장된 디지털 캠코더로 고화질의 풀HD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이에 한 고객이 민원을 제기하자 쿠팡 측은 “초소형 카메라 상품 관련 판매에 관한 제한 법규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판매 제재가 어렵다”고 답변했다.
몰래카메라(이하 몰카) 범죄가 진화하는 가운데 몰카 판매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몰카에 대한 기준이 애매해 법안 마련이 늦어지고 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1일 ‘몰카예방법’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주 1회 이상 공중화장실 등에서 몰래카메라 설치 여부를 점검하게 하고 몰카 상습범을 가중 처벌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몰카 판매 금지는 이번 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몰카 판매를 금지하는 법률은 전무하다. 현행법상 소형, 특수 카메라의 판매 및 소지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미국 등 해외에서 전문가나 허가 받은 사람에 한해 초소형 카메라를 판매할 수 있도록 제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몰카 판매를 금지하기 위해선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고 지적한다. 몰카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카메라 업계도 몰카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대게 초소형 카메라를 몰카로 통칭하는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초소형 카메라가 범죄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만은 아니다”며 “판매를 금지하거나 허가제로 변경하면 불필요한 규제를 양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초소형 카메라를 언론 등에서 공익적 용도로 사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몰카 판매에 대한 규제 미비로 몰카 범죄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몰카 범죄는 2006년 517건에서 지난해 5185건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몰카 범죄가 전체 성폭력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같은 기간 3.6%에서 24.9%까지 늘었다.
수법도 진화하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몰카의 외관과 성능은 한층 향상됐다. 현재 몰카 전문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물병형, 핸드폰 케이스형, 모자형, 넥타이형, 단추형 등 다양한 형태의 몰카를 판매하고 있다. 서울 용산 전자상가나 종로 세운상가 등 오프라인에서도 몰카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몰카 탐지기에 적발되지 않는 제품도 많다. 몰카 탐지기는 보통 몰카가 작동할 때 발생하는 주파수를 탐지해 몰카의 위치를 알려주거나 레이저를 이용해 몰카 렌즈에 반사된 빛을 찾아낸다. 그러나 고가의 몰카 장비는 주파수를 잡아내기 어렵고 장소에 따라 레이저를 이용한 탐지기를 쓸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와 관련 시민사회는 몰카 판매 규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시민입법 플랫폼 ‘국회톡톡’에는 1만6980명의 시민이 ‘몰카 판매 금지 법안’ 제정을 청원했다. 최초로 법안을 제안한 디지털성폭력대항단체 DSO(Digital Sexual Crime Out·디지털 성범죄 아웃)는 몰카 구매에 대한 전문가 제도와 구매자에 대한 관리시스템 도입 등을 강조했다.
지난 2015년에는 조정식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원이 초소형 카메라 판매를 허가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단속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으나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 바 있다.
아시아경제 티잼 김경은 기자 silver@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