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세 부류의 인간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인간(a)과 모두에게 불친절한 인간(b), 그리고 친절하거나 불친절한 인간(c). 대부분은 c에 속한다. 좋거나 나쁘거나, 결국은 중립적이다. b는 악당이고 불한당이다. 아무쪼록 인생에서 피해야 할 지뢰밭이다. 그렇다면 a는. 군자이거나 현인?
강신주 철학 박사의 생각은 다르다. 그의 저서 '강신주의 감정수업'에 따르면, 모두에게 친절하다는 것은 자기 욕망을 짓누르는 행위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눌러야 하는 고통이다. 그로 인한 정신적 노곤함. '착한 사람' 콤플렉스다.
소노 아야코의 '착한 사람은 왜 주위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가'는 논점을 '착한 사람에 대한 강박증'으로 확대한다. 타인은 원치 않는데 불필요한 선의를 강권하거나,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마지못해 선행을 흉내 내거나. 어느 쪽이든 피곤하긴 마찬가지다. "인간관계는 기본적으로 삐걱거리게 마련이다. 어긋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지나치게' 상대를 의식하지 마라는 조언.
사회나 기업도 마찬가지다. 끼어드는 차량에 연거푸 양보하는 운전자는 뒷줄의 교통체증을 알 리 없다. 후배들을 아낀답시고 저녁 술자리에 눈치 없이 끝까지 달라붙는 선배는 뒤통수가 따갑다. 배는 산으로 가는데 선후배에게 듣기 좋은 소리만 영혼 없이 내뱉는 동료도 오십보 백보다.
구자균 LS산전 회장도 한 마디를 보탰다. 얼마 전 임원 워크숍에서다. "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구분 없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전체 경쟁력이 하향 평준화된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는 "무조건 조직을 우선시하고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구태"만큼이나 민망하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일 '국민'을 강조한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하청업체에 일감을 준 원청업체에 책임을 묻겠다며 "국민이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신고리 5ㆍ6호기 원자력 발전소 중단 결정도 '국민의 뜻'에 따르겠단다. 문 대통령의 속내는 능히 짐작된다. '국민'이라는 두 글자가 갖는 정당성과 숭고함. 하지만 그런 선의가 언제나 올바른 정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남북 문제는 더욱 그렇다. 문 대통령이 스포츠 교류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겠다고 하자 북측은 '천진난만하다'며 퇴짜를 놨다. 그리고는 미사일을 발사해 한반도를 격랑 속으로 내몰았다. 모든 선의가 선행을 낳지는 않는 법이다. 역사적 고뇌일수록 선의가 아닌 원칙을 앞세워야 한다. 과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 문 대통령은, 이제는 조금 덜 착해도 괜찮다.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