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은행권 수장들은 바빠집니다. 달라지는 금융 정책이나 규제에 맞춰 경영 전략을 새로이 짜야 하기 때문인데요. 정부와 힘을 합쳐 더 나은 금융서비스를 내놓기 위해 활력이 도는 분위기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때로는 과한 충성(?)에 미간이 찌푸려지기도 합니다.
우리은행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지 이틀 뒤인 지난 11일 '더(The) 간편뱅킹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이미 지난해 출시했던 '우리 간편뱅킹 서비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인데 서비스 이름에 '우리'라는 행명이 빠지는 대신 '더(The)'가 붙은 겁니다.
잘 아시다시피 '더(The)'는 문 대통령의 소속 정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로고에 활용됐던 터라 이를 연상케 합니다. 실제 문 대통령의 대선 당시 캠프의 공식 명칭이 '더(The)문캠'이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기억할 겁니다. 다만 우리은행 측은 "(서비스 명칭 네이밍은) 대선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인 12일 신한은행은 '써니랑 부탄갈래'라는 이벤트를 실시한다고 발표합니다. 신한은행의 모바일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인 써니뱅크 이용자에게 뜬금없이 '부탄 여행 상품권'을 준다는 겁니다. 히말라야 산맥 일대에 위치한 부탄은 국토 면적이 한반도의 4분의 1에 불과한 작은 나라인데, 신한은행은 부탄에 지점을 두고있지 않고 진출 계획도 현재로선 없다고 합니다.
그럼 왜 하필 부탄일까요? 부탄은 문 대통령이 지난해 여름 본격 대선 레이스를 앞두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다녀왔던 상징적 장소입니다. 당시 부탄 정부 관계자와 친분을 쌓은 문 대통령은 요즘 '부탄식 행복론(論)'을 설파하고 있죠.
은행업은 대다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데다 '돈'을 다루는 만큼 타 산업군에 비해 규제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때문에 매 정권 교체 때마다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은행의 입장도 이해됩니다. 하지만 '관치금융을 타파하자'고 늘 주장해 온 은행이 정작 새 정권 앞에서 알아서 납작 엎드리는 모습은 한편 씁쓸함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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