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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설득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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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설득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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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리조나의 석화림 국립공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공원은 오랜 세월 바람과 눈비를 맞으며 돌처럼 굳은 나무화석(규화석)이 절경을 이뤘다. 관광객들은 나무화석에 넋을 놓다가도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슬그머니 꺾어가곤 했다. 그러자 자연훼손을 걱정한 공원 측이 입구에 안내문을 붙여놨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유산인 규화석이 무분별한 수집으로 인해 매일 14t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해피엔딩이라면, 이 안내문에 관광객들은 회개하고 각성해서 숲은 다시 평화를 찾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저 안내문을 본 관광객 커플이 "정말 많이들 가져가구나. 우리도 하나 챙겨갈까" 하는 말을 들은 공원 측은 부랴부랴 안내문을 바꿨다. '국립공원의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공원 내 규화석을 가져가지 말아주십시오.'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나무화석을 훔쳐가는 비율이 첫 번째 안내문은 7.92%인 반면 두 번째 안내문은 1.67%로 줄었다.

설득에 관한 심리학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또 다른 사례다. 캘리포니아주 어느 마을의 300가구를 대상으로 한 가지 실험이 진행됐다. 300가구가 1주일간 사용한 전기량의 평균을 낸 뒤, 이 평균치와 각 가정의 사용량을 기록한 팻말을 현관마다 걸어뒀다. 실험 목적은 전기 사용을 줄이는 데 있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평균치보다 많이 썼던 가정(A)은 전기 사용량이 5.7% 줄었지만 애초부터 적게 썼던 가정(B)은 오히려 8.6% 증가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A에 우는 얼굴 모양의 스티커를, B에 웃는 얼굴 모양의 스티커를 각 팻말에 붙였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A는 변동이 없었지만 B는 예전처럼 평균 이하의 전기 사용량을 유지한 것이다.

두 가지 사례가 의미하는 바는 이렇다. 첫째, 상대를 설득할 때는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메시지를 앞세워야 한다는 것. 둘째, 상대가 '설득당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유의미한 일로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


본디 인간은 확증편향적이어서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타인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록 그 생각이 틀렸더라도 아닌 척, 모른 척 버틴다. 농구계의 전설이자 철학자인 카림 압둘 자바는 이렇게 말했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게(바라건대 낙하산을 멨기를!) 어떤 견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 더 쉽다." 그러니 내 논리가 완벽하고 합리적이어서 상대가 별 수 없이 설득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자 오만이다.


설득은 내가 시키는 게 아니라 상대가 받아주는 것. 그런 점에서 '넛지 운동'의 선구자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의 조언은 꽤나 신선하게 들린다. 남자 공중화장실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소변기를 깨끗하게 사용합시다' 따위의 팻말을 걸어놓지 마라. 소변기 중앙에 파리 한 마리를 그려넣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어쩌면 설득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요, 한발 나아가는 게 아니라 한 템포 쉬는 것이다. 내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함께 듣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지고 거짓이 드러난다. 대통령 선거 D-12. 한 표가 아쉬운, 무관심을 넘어 거부감을 극복해야 하는 대선 주자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진리다.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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