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접한 청년들 "창업도 포화 상태" "공무원의 반대말은 창업인가"
국내 대학 창업 동아리·강좌 매년 증가하는 추세
미국 실리콘밸리 신화도 옛말…'시니어 창업' 대책 준비해야 할 때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청년들의 꿈이 9급 공무원, 건물주인 나라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창업하는 것이 꿈인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신림동 고시촌과 노량진 고시학원이 실리콘밸리와 같은 창업의 요람이 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
바른정당 대권주자인 유승민 의원은 그동안 청년 세대를 향해 이처럼 창의성과 도전정신,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곤 했다. 청년들의 활발한 창업을 통한 '혁신 성장'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유 의원이 지난달 발표한 혁신성장 공약 발표문을 실제 접한 청년들은 대부분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고시촌을 실리콘밸리로'라는 구호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고, 창업에 실질적 도움을 줄 대책이 빠졌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요즘 애들은 열정이 없고 꿈이 없다'고 하는 비판같이 들려서 불편하다.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줄이는 게 먼저다(정모씨ㆍ32)" "대한민국은 공무원도 되기 힘들지만 창업도 포화상태라 현실성이 있을지 모르겠다(이모씨ㆍ32)"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않은 채 열정만 갖고 창업에 뛰어드는 것도 문제(이모씨ㆍ33)" "공무원의 반대말은 창업이라는 식으로 들린다. 직업을 이런 식으로 분류하는 건 올드하다(이모씨ㆍ30)" "정부 차원에서 직접 창업자금 지원과 기업 홍보에 나서달라(김모씨ㆍ28)"
반응은 그렇다 치자. 유 의원의 말처럼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정말 공무원 시험에만 혈안이 된 걸까. 최근 통계로 본 청년들의 창업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지고 있다. 대학 산학협력활동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학교 창업동아리 수는 2013년에 2782개, 2014년 3690개, 2015년 4380개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창업 강좌가 운영되고 있는 대학교는 300곳에 달하고, 창업 강좌 이수 학생 수는 28만9886명으로 전년 대비 33.1% 급증하기도 했다.
유 의원이 언급한 미국 실리콘밸리 신화도 이제 옛이야기에 불과하다. 2000년대 초반 재창업과 투자로 실리콘밸리를 좌지우지한 '페이팔 마피아'처럼 성공 사례가 빛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의 비영리단체 카우프만재단 조사를 보면 미국 창업기업 수는 경제위기 등의 영향으로 2006년 정점을 찍은 뒤 급감하는 추세다. 2006년 대비 2010년에는 31%가 줄었고, 2012년에는 27%가 감소했다.
10만명당 창업기업 수를 나타내는 창업밀도는 1970년 말 이래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창업 활동이 감소하면서 지난 10년간 20~30대의 창업률도 둔화되고 있다. 고령화 현상으로 50~60대의 창업률은 오히려 증가 추세여서 유 의원이 제시한 '청년 창업'보다 '시니어 창업' 지원책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 의원은 창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공약을 발표했다. 연대보증제 폐지 등 창업 실패의 위험부담을 줄이는 한편 투자 확대, 규제 완화, 세제 혜택, 교육제도 개선 등의 방안을 내놨다. 또한 창업벤처 관련 업무의 컨트롤 타워로서 기존의 '중소기업청'을 '창업중소기업부'로 승격시키겠다고 밝혔다.
다만 여기에 정부가 창업ㆍ기업 경영에 필요한 행정기관 인허가와 각종 보고 업무를 대행하고 비용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미국 중소기업청은 전국 77개 시와 협력해 '1일 창업' 프로그램을 추진함으로써 정부가 창업 소요기간을 줄여주는 데 발벗고 나서 눈길을 끈다.
창업 교육의 경우 스웨덴의 사례를 주목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싶다. 스웨덴은 초등학교 때부터 다양한 창업 교육을 실시할 뿐 아니라 고등학생에게는 가상 창업을 통해 기업을 1년간 운영해보는 UF포타간데(UFforetagande) 프로그램을 교육한다. 스웨덴 린네대학의 경우 절반에 이르는 학생들이 혁신적 사고 교육 과정인 '창업가정신 대학'이라는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대학 주변에는 창업 인큐베이팅 센터들이 예비 창업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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