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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애인/유수연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4초

 
애인은 여당을 찍고 왔고 나는 야당을 찍었다


서로의 이해는 아귀가 맞지 않았으므로 나는 왼손으로 문을 열고 너는 오른손으로 문을 닫는다

손을 잡으면 옮겨오는 불편을 참으며 나는 등을 돌리고 자고 너는 벽을 보며 자기를 원했다


악몽을 꾸다 침대에서 깨어나면 나는 생각한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애인을 바라보며 우리의 꿈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악몽 중 하나였지만 금방 잊혀졌다


벽마다 액자가 걸렸던 흔적들이 피부병처럼 번진다 벽마다 뽑지 않은 굽은 못들이 벽을 견디고 있다


더는 넘길 게 없는 달력을 바라보며 너는 평화, 말하고 나는 자유, 말한다


우리의 입에는 답이 없다 우리는 안과 밖
벽을 넘어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나를 견디고 너는 너를 견딘다


어둠과 한낮 속에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티브이를 끄지 않았으므로 뉴스가 나오고 있다


[오후 한詩] 애인/유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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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문장부터 "여당"이나 "야당"이라는 단어들이 적혀 있다고 해서 이 시를 곧바로 정치적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단어들은 사전적인 의미를 존중하자면 차라리 위상차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위상차는 금세 정치적인 것으로 환원되고는 한다. 그러나 이 시는 그보다 어떤 "악몽"에 대해 쓰고 있다. 그 "악몽"의 정체는 비교적 선명하다. "악몽을 꾸다 침대에서 깨어나"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애인을 바라보며 우리의 꿈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 그것이다. 즉 다만 꿈에 지나지 않는 '악몽'을 현재화하는 것이 진정한 "악몽"의 시작인 셈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사태는 그 "악몽"을 고착시키고 심지어는 탐닉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견디고 너는 너를 견딘다"를 '나는 나를 생각할 뿐이고, 너는 너를 애착할 뿐이다' 정도로 변주하거나 확장해 보면 그렇다. 그래서 이 시는 끝내 참담하다. 그러나 그래서 이 시는 오히려 지극히 윤리적일 가능성이 있다. '나는 나를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너를 견디지 못하는 나를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지면 너머에서 일깨워 주고 있기 때문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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