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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처형식 / 김윤선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1초

 
실루엣이 길어 슬픈 여자가
등대의 눈을 닮은 남자 쪽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다가서지 말라고
모두가 말리는데도
재가 되어도 좋아, 고백부터 했던
그 여자의 허리가
거칠게 잘려 나가는데

아름다워라, 세상에
봄날의 연두를 꿈꾸던 플라타너스의 속살이
눈처럼 하염없이
흩날리는구나!
중심을 파고드는 전기톱의 굉음에
눈감은 가로등 혼자 속으로 울고


잘린 나무 자리에선
어린 연인들의 긴 포옹
모르고 넘어가는,
밤의 세계는 고요하기도 하지

피비린내 나는
비명횡사의 풍경
하찮고도 장엄했던 그 순간을
바라보기만 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
자주 어두워지는, 한낮의 슬픔에 대해
너무 쉽게 잊어버렸다


[오후 한詩] 처형식 / 김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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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맘때 근린공원이나 대로변을 걷다 보면 전기톱 소리가 굉굉하게 한참 들리곤 한다. 봄이 오기 전 가지치기를 하는 소리다. 그런데 간혹은 윗가지를 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중동 아래까지 잘라 버리기도 한다. 물론 가로등을 가린다든지 인접한 건물의 창문을 넘봐서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안타깝고 살풍경한 장면임엔 분명하다. 나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건 정말이지 "비명횡사"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매정하게도 나무가 당한 "한낮의 슬픔" 따위야 "별일 아니라는 듯"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사람이 하는 일이 참 모질다 싶다. 그래서인지 "잘린 나무 자리에선/어린 연인들의 긴 포옹"이라는 두 행과 그것을 "모르고 넘어가는" "밤의 세계"가 "고요"하다는 저 세 번째 연이 여러 겹으로 마음에 맺혀 풀리질 않는다. 시인의 마음결이 향한 곳은 "잘린 나무"였을까, "어린 연인들의 긴 포옹"이었을까, 무념한 "밤의 세계"였을까, 아니면 몰인정하기 짝이 없는 저 한낮의 "처형식"이었을까? 아마도 그 모두였을 것이다. "하찮고도 장엄"하다는 그저 모순이나 역설이 아니라 우리 세계의 끔찍하나 부인할 수 없는 실재를 집약하고 있는 문장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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