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 김근철 특파원] 최근 CNN 방송은 미국의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을 집중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 중 미 중부 지역의 한 소도시 주민인 중년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다니던 직장이 문 닫은 게 몇 년 전이다. 요즘은 자동차로 왕복 3시간 거리에 있는 한 점포에서 시급을 받아서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 트럼프가 비난을 받더라도 더 많은 일자리만 만들어주면 된다." 그는 당당했다.
지난 주 만난 월가 금융기업에서 일하는 한 지인은 숨은 트럼프 지지층 발견 경험담을 들려줬다. "백인 동료 10여명이 최근 파티 모임에서 대선 때 누굴 찍었는 지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런데 100% 트럼프를 찍었다고 해서 서로 놀랐다. 모두 고액 연봉자들인데 월급의 절반을 세금으로 뜯기다보니 세금을 대폭 낮춰준다는 트럼프에 매력을 느낀다고 하더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한달만에 전세계에서 동네북이 됐다. 취임 한달 국정 지지도인 39%는 역대 미 대통령 중 최저치다. 그런데도 트럼프 지지층은 여전히 건재해 보인다. 지난 18일 플로리다주 멜버른에서 열린 트럼프 지지 집회와 그 뜨거운 열기가 단적인 예다. 이들에겐 아직 트럼프 대통령의 일탈과 구설수들이 그리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것 같다.
트럼프를 통해 그들이 이루고 싶어하는 변화의 욕구가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원동력 삼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다시 거세게 밀어붙일 기세다.
사실 미국 우선주의도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창작물이 아니다. 이미 오랜 시간 미국 사회의 한 축을 형성하고 내부로 젖어든 저류라고 봐야 한다. 1940년에 창립됐던 '미국우선주의 위원회(AFC)'는 당시 미군의 해외 파견을 반대하며 미국 이익 최우선 정책 도입을 부르짖었다.
지난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의 히트 상품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대선 구호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80년 선거 당시 내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듭시다'(Let's make america great again)를 재활용한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과 기조가 미국인들에게 낯설고 당황스러운 것만은 아니란 의미다. 때마침 미국 사회는 지난 수십년간의 신조였던 자유와 개방, 세계 경찰로서의 자부심에 대한 피로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신 국내 산업과 자국민 보호에 더 눈길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어찌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폐쇄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미국을 드러내고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인 셈이다. 이는 달라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긴 호흡의 연구와 장기적 대응이 필요해졌음을 시사한다. 손가락만 쳐다보다가 달의 변화를 놓쳐선 안 된다.
뉴욕 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