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게이트에 기업감시 요구 커지지만
앞장서야 할 기관들 서로 눈치만
기업경영 자율성 침해 지적은 부담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한국형 스튜어드십코드'가 도입된지 50여일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이를 채택한 기관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순실 게이트' 사태 이후 기업 경영에 대한 감시 요구가 커지고 있으나 이 역할에 앞장서야 할 기관은 서로 눈치만 살피는 모습이다. 오는 3월 상장사 2000여곳이 정기 주주총회를 열 예정이지만 기관은 과거처럼 또 거수기 노릇만 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관련기사:기관, 또 주총 거수기 되나)
8일 금융투자업계 및 한국기업지배구조원(CGS) 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9일 스튜어드십코드가 시행된 이후 현재까지 이를 채택한 기관은 '제로(0)'다. 스튜어드십코드 제정을 주관한 기업지배구조원 관계자는 전날 "몇몇 기관에서 문의는 해왔지만 아직까지 가입한 기관은 단 한곳도 없다"고 말했다.
기관이 이를 채택할 경우 기업지배구조원 홈페이지에 참여 여부와 수준 등이 공개되지만 아직까지 관련 기록은 없다. 수년간 진행된 논의와 합의의 산물이 도입 50여일까지는 무용지물 취급을 받고 있는 셈이다.
스튜어드십코드란 연기금 등 주요 기관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침이다. 의결권 행사내용과 그 사유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기업에 대한 견제와 감시의무 등 7개 원칙과 세부지침으로 구성됐다. 2010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된 이후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일본, 홍콩 등에서 시행중이다. 한국에선 2014년 11월부터 금융위원회의 주도로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 추진됐다.
다만 기업에 대한 견제와 감시의무가 지나칠 경우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은 부담이다. 기업 경영에 대한 연기금 등의 관여가 도를 넘어 권력화될 경우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금융위가 지난해 말 스튜어드십코드 제정 막판 의무가 아닌 '민간 자율협약' 방식으로 시행하는 것이 낫다며 제정 주체에서 빠진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문제는 이 같은 조치가 국민연금 등 큰손들이 현재까지 "가입을 검토해보겠다"는 식의 원론적 답변만 되풀이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는데 있다. 일부 공제회는 시행 직전까지 기업지배구조원 측에 여러 차례 문의를 해왔으나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최근 도입을 보류했다.
국내 기관들은 스튜어드십코드 채택에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도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비용을 꼽는다. 스튜어드십코드에 가입하기 위해선 각 기관들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스튜어드십코드 가입여부를 공개해야 하고 가입했을 경우 7개 원칙 중 어느 원칙은 지키고 어느 원칙은 시행을 유보한다는 방식을 공표해야 한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직과 인력이 필요한데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기업지배구조원 측은 현재 가입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중이다. 기관이 일부 요건만 갖추면 스튜어드십코드 '가입기관'이 아닌 '가입 예정기관'으로 표기하는 식이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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