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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교수에게 돌을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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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교수에게 돌을 던져라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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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범, 조원동, 김종, 김상률, 김종덕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최순실 국정농단의 조연들이라는 것은 쉬운 답이다. 공통점은 또 있다. 잘 모르겠다면 다음 이름을 추가하면 더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최경희, 김경숙, 남궁곤, 류철균이다.


이제야 독자들은 씁쓸하게 웃을 것이다. 그렇다, 이들의 공통점은 교수다. 대한민국 지식인 사회의 정점에 있는 교수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존경 받는 지위에 있는 교수들이 최순실의 하수인이 되었고, 그녀의 딸 정유라를 위한 학사 비리를 저질렀다.

1970년대와 80년대, 교수는 지식인이자 저항의 상징이었다. 80년만 해도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문에 전국적으로 해직된 교수들은 87명이나 되었다. 또 대학에 남아 있던 교수 가운데도 지식인으로 행동한 분들이 많았다.


당시 독재정권은 교수들의 수업을 감시했다. 학내에 사복 경찰이 들어와 요주의 교수의 수업 내용까지 기록하는 상황이었다. 누가 학생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교수라도 발언하기 지극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속에서도 서울대 최종고 교수의 법학개론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어느 날 교수님은 ‘사적 소유에 반대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고 했다. 내가 손을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수업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최 교수님은 내 수업은 괜찮으니 의견을 말해 보라고 했다. 몇몇 학생이 손을 들었고,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사적 소유를 부정하는 공부를 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그래도 이렇게 긍정하는 사람이 많구먼 허허’


하지만 이제 대학에서 그런 가치 판단의 문제와 무엇이 옳은가를 논하는 수업은 거의 없다. 연구비를 잘 끌어오는 교수, 별 가치 없는 논문을 대량 생산해 학교 랭킹에 공헌하는 교수가 인정받는 곳이 대학이다. 지식인으로서의 교수는 죽었다.


대한민국 교수에 주어진 두 번째 역할은 지식 창조자이다. 한국 사회는 팔로워에서 혁신자로 이행하는 과도기다. 이는 기업에서 사회, 그리고 대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 조직에 주어진 과제이자 숙명이다. 과거 캐치업(catch-up) 방식의 성장 모델, 즉 선진국의 제품을 빠르게 모방하는 방식은 이제 통용되지 않는다. 한 때 IT나 인터넷에서 한국은 세계를 주도하는 이노베이터(혁신자)가 되었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아니다. 4차산업혁명의 주요 모듈인 AI(인공지능)나 로봇, 3D프린터, IoT 등에서 한국은 더 이상 리딩 컨트리(leading country)가 아니다.


여기서 한국의 교수는 한국 사회의 돌파구를 열어주는 선구자로서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런 역할 역시 미미하다.


세 번째 교수의 역할은 고유 기능인 교육이다. 다만 과거와 같이 화이트컬러 대량생산 공장으로서의 대학이 아닌 미래 사회에 걸 맞는, 창의적 인재 교육의 주체로서의 교수다. 아니, 창의적 교육까지는 못해도 좋다. 지금 좌절하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그나마 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는 교육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나는 수업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사회에는 불평등이 만연하고 있다고, 하지만 적어도 내 수업에서만큼은 평등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노력하는 학생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그래서 취업한 학생에게조차 똑같이 과제 제출과 수업참여를 하도록 해왔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학생을 교육하는 교육자이기 때문이다.


교수는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사회가 부정으로 얼룩져도 대학과 교수는 달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과 이화여대 사태는 한국사회에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다.


조선말 유학자인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서원철폐령을 이렇게 쓰고 있다.


‘서원의 설치는 최초에는 좋은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서원은 폐단이 많아 그들을 가리켜 가죽을 뚫고 골수를 빨아먹는 남방의 좀이라고까지 불렀다. 서원철폐라는 비상지변을 당한 서원 내 유생들은 미쳐서 날뛰어 반대하는 상소가 연달았으나 양식 있는 이들의 비웃음을 받았다.‘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47개 서원 만이 남고 수백 개의 서원이 폐쇄되었다. 만일 이런 식으로 대학 교수가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거나, 반사회적인 행위로 지탄 받으면 제2의 서원철폐령이 나올 지 누가 아나.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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