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총수 9명 최순실 국조특위 1차 청문회 참석
이재용 "재단 출연, 들은 적 없다"
"두 차례 대통령 독대 때 문화·스포츠 융성 지원 요청만 받아"
장제원 의원 "한화도 말 두필 상납"…김승연 회장 "모르겠다"
[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삼성은 10억원, 한화는 8억원 상당의 말을 비선실세의 딸인 정유라씨에게 상납했다. 정씨는 이 말을 타고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고, 두 그룹사는 '빅딜'을 성사시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그룹 총수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기업들의 민낯이다."(장제원 새누리당 의원)
"이번 일로 국민에게 많은 우려와 심려를 끼쳐 드린 것 잘 알고 있다. 무거운 마음으로 나왔다. 절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지 않도록 하겠다."(이재용 부회장)
◆28년 전 데자뷔…오전 질의만 150여분 이어져= 28년 만이다. 1988년 12월14일 '제5공화국 비리조사 국회 특별위원회' 증인석에는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비롯해 이건희 삼성 회장, 김우중 대우 회장, 구자경 럭키금성 회장, 최종현 선경 회장, 조중훈 한진 회장, 신격호 롯데 회장 등이 출석했다. 이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딴 일해(日海) 재단에 500여억원의 돈을 각출했다는 이유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최순실 게이트 국조특위)'의 1차 청문회장에는 당시 출석했던 그룹 총수의 아들들이 증인석에 섰다. 정주영 회장의 아들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 구자경 회장의 아들인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종현 회장의 아들인 최태원 SK 회장, 신격호 회장의 아들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중훈 회장의 아들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이다.
6일 오전 9시56분 국회 본청 복도는 9명의 대기업 회장들로 붐볐다. 최연장자인 정몽구 회장이 앞장서 대오를 이끌었다. 바로 옆과 뒤에는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GS그룹 회장), 구본무 회장이 자리했다. 이재용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등이 줄지어 뒤를 따랐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회장들의 얼굴에선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 회장들은 오전 10시 본청 245호의 국조특위 증인석에 착석했다.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최연장자인 정몽구 회장의 얼굴에선 어떤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마음을 비운 듯했다.
◆한화도 '정유라 승마' 논란…이재용 "전경련 기부금 납부 중지하겠다"=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이 의사봉을 세 차례 두드리며 개회를 선언했다. 첫 질의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향했다. 장제원 의원은 "2014년 (계열사인) 한화갤러리아 승마단 명의로 8억3000만원을 주고 (유럽에서) 명마 2필을 구입했다"며 ""이 말 두 필이 한화승마단 소속인 박원오씨를 통해 사실상 정씨의 전용말로 쓰여졌고 정씨는 이 말로 훈련을 받아 같은 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다"고 말했다.
10억원대의 말을 삼성이 정씨에게 지원했다는 의혹에 이어 다시 한 번 정권의 비선실세 일가와 대기업 간 뒷거래를 부각시킨 것이다. 김 회장은 "잘 모르겠다. 죄송하다"고 답했다.
한화그룹 측은 뒤늦게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한화갤러리아 승마단이 2014년 구입한 말은 1필이고, '파이널리'란 이름의 이 말은 승마단 직원이 덴마크에 직접 연락해 구입한 뒤 김동선 선수가 아시안게임에서 탔다"고 해명했다. 의혹이 일파만파 커진 뒤였다.
그 이후로 질문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집중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대통령으로부터 문화융성과 체육 발전을 위한 자금 출연 요청을 받은 바 있나"라는 이만희 새누리당 의원의 질의에 지난해 7월과 올해 2월 두 차례에 걸쳐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사실을 인정하고 박 대통령으로부터 문화융성과 스포츠 발전을 위해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의원이 '강압적이거나 강요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나'라고 묻자 이재용 부회장은 "사실 당시에 정확히 재단이나 출연하라든지 이런 이야기는 안 나왔다"며 "독대 당시에 무슨 이야기였는지 솔직히 못 알아들었다"고 답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은 "저희한테 많은 지원요청이 문화, 스포츠를 포함해 각계각층에서 들어왔다"며 "단 한 번도 바란다든지, 반대급부를 요구하면서 출연하거나 지원한 적이 없다. 이 건도 마찬가지"라고 해명했다.
이어 "(최순실씨의 딸인) 정씨를 언제부터 알았느냐"는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의 질의에는 "최씨 일가와 관련된 세부 지원 내용을 잘 몰랐다"고 답했다.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거듭된 질문에도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또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의 "앞으로 전경련에 기부금을 내지 말라"는 요구에 "그렇게 하겠다"고 응답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향후 전경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그는 "체제를 정비해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최태원 "靑에서 할당한 액수만큼 냈다"…허창수 "靑 요청 거절하기 어려웠다"= 이 밖에 정몽구 회장에게는 현대차의 차은택씨에 대한 광고 일감 몰아주기가, 최태원 회장에게는 사면과 면세점 청탁과 관련된 의혹이, 구본무 회장에게는 재단 출연 경위 등의 질문이 주어졌다. 신동빈 회장에게는 면세점 사업자 추가 선정 대가와 관련한 질의가 이어졌다.
최태원 회장은 "청와대에서 기업별로 할당한 액수만큼 돈을 냈다"고 답했다. K스포츠재단 추가 출연요구 질문에 대해선 "80억원을 추가로 요구받았다"며 "실무진으로부터 사후에 들었지만 당시 제의받은 계획이나 이야기가 상당히 부실했고 돈을 전해 달라는 방법도 부적절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도 "기업이 청와대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조양호 회장은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사퇴 압력을 받았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그런 사실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날 오전 질의만 무려 150여분간 이어졌다. 17명의 의원들은 번갈아 가며 7분씩 질의했다. 이들은 5분, 3분씩 추가로 질의할 수 있고, 한 의원이 여러 증인에게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한편 김성태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 앞서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비선실세 최순실씨를 비롯해 최씨의 언니 순득씨, 조카 장시호씨 등이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한 것을 놓고 동행명령장 발부 등 "불출석 증인들을 국민 앞에 세울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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