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퇴진 전제' 총리 제안은 거부
대변인 "야당 주장에 일관성이 없어 지켜보자는 뜻" 해명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청와대가 20일 국회의 국무총리 추천에 대해 "지켜봐야 한다"고 밝혀 미묘한 변화를 시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일 국회를 방문해 "여야 합의로 국무총리 후보자를 추천해준다면 수용하겠다"고 언급한 이후 청와대는 "국회가 하루빨리 추천해달라"고 요청해온 것과 결이 다르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회의 총리추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통령이 제안했는데, 그 제안에 대해 야당이 계속 거부를 해왔고 여러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며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 대변인은 이어 "대통령이 제안한 것에 야당은 다른 뜻으로 말하고 있다"면서 "조건이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의 이 같은 변화는 대통령 퇴진을 전제로 국회가 국무총리를 제안할 경우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야당은 총리 후보자 추천에 앞서 박 대통령의 퇴진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총리 권한 역시 대통령의 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청와대는 '국무총리에게 전권을 이양하라'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총리가 헌법에 보장된 권한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책임총리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정 대변인이 "조건이 달라졌다" "지켜봐야 한다"고 언급함에 따라 국회의 총리 추천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청와대의 이 같은 반응은 대통령 탄핵에 대비한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는 전날 검찰 중간수사결과에 대해 공식 브리핑을 통해 "차라리 탄핵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이 탄핵되더라도 황교안 국무총리로 정국을 밀고 나가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정치권의 탄핵논의를 쉽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야당은 그동안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외치면서도 쉽게 결단하지 못했다. 검찰의 수사결과를 확인한 후 추진하자는 견해도 있었지만 탄핵된 이후 황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을 수 있다는 점도 컸다. 결국 청와대가 국회의 총리 후보자 추천을 거부하면 황 총리를 유임할 수밖에 없고 야당의 탄핵 추진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청와대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야당은 반발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야당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더라도 총리는 대통령이 추천해 임명을 받아야 한다"며 "이것이 헌법적 절차"라고 일갈했다.
정 대변인은 자신이 브리핑한 내용이 논란을 일으키자 이날 오전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지켜보자'고 말한 것은 야당의 주장에 일관성이 없으니 우리로서는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며 "대통령이 총리 권한에 대해 하신 말씀에 입장변화는 없으며 야당과 대화를 통해 풀어가야 한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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