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박근혜 찍었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한창 시끄러워지기 시작할 무렵 모처럼 둘러앉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딸아이가 기습질문을 해왔다.
이제 곧 11살이 될 꼬마가 어디서 무엇을 들었는지,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눈치였다.
"왜~?", "사람들이 그러는데 대통령을 잘못 뽑았대."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친구들과 그런 대화를 했던 모양이다.
"어, 앞으론 어른들이 잘 뽑아야겠지, 10년 있으면 너도 투표권이 생기니까 그땐 꼼꼼히 살펴보고 아빠랑 같이 투표하러 가자."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은 정치가 무엇인지, 국정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에게까지 유명인사가 됐다. 이제까지 밝혀진 사실, 제기된 의혹만 파도 책 한질은 족히 나올 법한데 그동안 의문시 된 것들까지 끄집어낸다면 진실을 대하는 것 자체만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개성공단 전면폐쇄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과 같이 우리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줄 사안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그동안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던 질문들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다. 찬반과는 별개 문제다.
몰라서, 겉만 보고, 설마 했던 사람들 모두 '바보'가 됐다. 조력자·부역자들에게도 제대로 한방 먹었다. 우리 사회 1%에 있는 그들에게 말이다.
대가를 제대로 치르게 하고, 정의를 바로 세운 나라만이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아직 그런 경험이 없다. 그래서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초를 들고라도 광장에 나가는 것이다.
부와 권력을 지키려는 자들은 영악하다. 그래서 자기의 이권을 지키고 불려줄 정치인을 잘 골라 뽑는다. 그들은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정치의 본성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철저히 이용할 줄 안다.
개발론자에 열광하다 산동네서 쫓겨나는 사람들,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도 나라 경제만 걱정하는 사람들, 아들·딸이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데도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몰표를 주는 사람들, 등록금에 허리가 휘면서도 선거날 놀러가는 사람들. 이들이 탄탄하게 1%의 밑바닥을 지탱해주는 한 세상도, 그것을 움직이는 시스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어쭙잖은 이타심과 막연한 애국심은 나와 자식, 손자ㆍ손녀까지도 고단하게 만든다.
김민진 사회부 차장 e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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