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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화의 와인으로 세상보기> 병 대신 잔 '바이더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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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화의 와인으로 세상보기> 병 대신 잔 '바이더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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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 몇일 전 프랑스 친구한테 사진 한 장을 전송 받았다. 와인과는 무관한 직업을 갖고 있지만 대단한 와인 애호가인 그가 파리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잔으로 판매되고 있는 와인 리스트를 핸드폰으로 찍어서 보낸 사진이었다. 여러 와인 이름 중 이룰레기(Irouleguy), 프랑스 남서부지역에 위치한 작은 와인 생산지역 명칭에 눈길이 쏠렸다.

이룰레기 지역의 와인은 전세계 모든 와인들이 다 모인다는 영국 런던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와인 중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생산자인 아렛체아 (Domaine Arretxea)의 화이트 와인이, 그것도 1500㎖ 메그넘(보통 와인 용량은 750㎖로 그 두 배)병에 든 와인이 잔으로 판매되고 있다니 반가우면서도 놀라웠다. 가격은 120㎖ 한 잔에 15.2 유로, 잔으로 판매되는 화이트 와인 중 제일 비쌌다. 옆에는 같은 와인을 메그넘 병으로 주문하면 158 유로라고 적혀 있었다. 12 잔으로 나누어 판매할 경우 약 24.4 유로의 이익을 더 남기는 것이니 와인 잔 및 서비스 등의 추가 비용을 감안하면 적당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잔으로 판매하는 와인, 즉 바이더글라스 (by the glass)와인이 런던, 파리, 뉴욕, 홍콩 등의 와인 바나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더욱 환영받고 있는 추세이다. 750 ㎖ 한 병의 와인이면 75㎖ 분량으로는 10 잔, 125 ㎖ 분량으로는 6잔을 따를 수 있다. 업장에 따라 25 ㎖에서부터 30, 50, 75, 125, 150, 175 ㎖ 등 다양한 분량의 와인을 다양한 가격 대의 잔 와인으로 판매하고 있는 곳을 이들 도시에서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번 칼럼 주제를 염두에 두고 런던에서 손꼽히는 와인리스트를 갖추고 있는 소셜 와인 앤드 타파스 (Social Wine & Tapas) 그룹의 헤드 소믈리에인 로르 파트리 (Laure Patry)에게 잔 와인 트렌드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로르는 프랑스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약 중인 대표적인 여성 소믈리에로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정확한 수치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하루 평균 약 40~50%의 와인이 잔으로 판매된다고 말했다. 3~4명의 손님들이 각자 1병 분량의 와인을 모두 다른 종류의 잔 와인으로 주문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특히 타파스 형태의 다양한 음식에 맞춰 이것저것 다양한 와인을 마셔보려는 여성 고객이 많다고도 했다. 물론 잔으로 판매하는 경우 서비스나 와인의 관리 및 보관에 더 많은 손이 가고 힘이 들지만 전체적인 매출에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더했다.


지난 해 런던 중심가에 들어선 멤버쉽 와인 클럽인 67 Pall Mall은 잔으로 주문 가능한 와인이 200여 종에 달한다는 것을 강점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는 못 미치지만 소셜 와인 앤드 타파스 역시 70 여 종의 잔 와인 리스트를 갖추고 있으며 그 중 30종 가까운 고급 와인들은 별도로 분류, 코라뱅(Coravin)이라는 제품을 사용해 제공 하고 있다. 세계 최고가의 와인으로 유명한 부르고뉴 지역의 로마네꽁띠가 생산한 2004년도 산 그랑 에세죠 (Grands Echezeaux, Domaine de la Romanee-Conti) 라는 와인도 코라뱅을 이용해 잔으로 마실 수 있다. 단, 50㎖ 한 잔에 120파운드(약 17만원, 그나마 브렉시트 여파로 파운드화가 하락해서 이 정도다.)라는 가격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코라뱅은 가느다란 바늘과 아르곤 가스를 이용, 와인 마개인 코르크를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병 안에 있는 와인을 원하는 만큼 뽑아낼 수 있도록 개발된 제품이다. 엔지니어 출신이자 와인 애호가였던 미국인 그렉 람브레트 (Greg Lambrechts)가 개발한 것으로 2013년 7월 첫 공식 판매가 시작된 이래 와인 소비 문화를 바꾼 혁신 제품으로 집중 조명을 받아 왔다.


본인 자신이 하루 저녁에 여러 종류의 와인을 한 잔씩 즐기고 싶었던 그렉, 그는 분명히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고민에서 시작, 1999년 코라뱅 발명을 본격화 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의 공식 웹사이트는 현재 (2016년 10월 27일 기준) 북미, 유럽, 홍콩, 일본, 뉴질랜드 등 세계 46개 국에서 코라뱅을 만날 수 있다고 알리고 있다.


한편, 많은 와인 샵이나 바, 레스토랑에서는 코라뱅 이전부터 널리 사용 되어 온 와인 디스펜서 기계 (wine dispenser, 니트로젠 혹은 아르곤 가스를 주입하고 그 압력으로 정해진 양만큼의 와인을 뽑아내는 시스템으로 이탈리아의 Enomatic이 대표 브랜드)를 통해 잔 와인을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코라뱅이나 디스펜서와 같은 전문 제품을 갖추고 있지 않은 다수의 유럽 레스토랑들도 적게는 한 두 종류의 하우스 와인을 잔으로 판매하는 것이 꽤 보편화되어 있다.


잔 와인을 선택할 때는 와인의 신선도 확인에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유의사항이 있다. 와인은 공기와 접촉되는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되므로 특히 이를 막아주는 아르곤이나 니트로젠 가스의 역할이 없다면 신선도가 하락 했거나 맛이 변질 되었을 확률이 더욱 높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코라뱅이나 디스펜서와 같은 시스템을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극소량의 산소 접촉이나 사용되는 바늘 혹은 튜브 등을 통한 세균, 곰팡이 감염 등 품질 저하 요소들이 완전히 배제될 수 없다는 점도 참고해야 한다.


지난해 2월, 마스터오브와인 공부를 함께하는 3명의 친구들과 프랑스 보르도 시내에 위치한 막스 보르도 (Max Bordeaux)라는 곳에서 디스펜서 기계를 이용해 와인을 시음할 기회가 있었다. 20 종류가 조금 넘는 와인을 시음하는 동안 와인 상태가 좋지 않아 환불을 요청한 경우만 네 번 이었다. 환불까지 요청하지는 않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의 와인들도 여럿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절반 이하, 소량의 와인이 담긴 병에서 따라낸 와인들이었다.


코라뱅은 아직 한국에 정식으로 수입 되고 있지 않지만 디스펜서 기계를 이용해 잔 와인을 판매하고 있는 와인 바나 레스토랑이 서울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러한 추세는 계속 되리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자 바램이다.


식사와 가볍게 와인 한두 잔 즐기고 싶은 경우, 여러 음식에 맞춰 다양한 와인을 맛보고 싶은 경우, 술이 약해 딱 한 잔이면 충분한 경우 그리고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경우 등 병으로 주문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때 잔 와인만큼 좋은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전제 조건은 있다. 전문가에 의해 선별되고 제대로 관리 된 와인을 무엇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마실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 이다.


끝으로, 잔으로 주문한 와인의 품질 상태가 상당히 의심스럽다면 소믈리에나 담당자에게 예의를 갖춰 조심스럽게 물어 보길 권한다. ‘혹시 이 와인 언제 오픈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정도의 질문으로 시작하면 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센스 있는 전문 소믈리에라면 현명하고 합당하게 대응할 것이다.


<남경화의 와인으로 세상보기> 병 대신 잔 '바이더글라스' 남경화 와인커뮤니케이터

남경화는 와인 커뮤니케이터이자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며 디켄터 월드 와인 어워즈를 비롯한 유수의 국제 와인 품평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다. 2005년 호주 와인 통신원 활동을 시작으로 한국, 호주, 홍콩, 프랑스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아 왔으며, 호주 애들레이드대학 와인비즈니스 석사 및 WSET 디플로마 과정을 마쳤다. 현재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와인 관련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마스터오브와인에 도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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