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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화의 와인으로 세상보기] 가벼운 병에 든 와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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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화의 와인으로 세상보기] 가벼운 병에 든 와인이 좋다 (사진=남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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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리 무거운 와인 병 혹은 다른 술이나 음료수 병을 들어본 경험이 있다면, 그리고 그 병들 자체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궁금한 적이 있다면 이 글이 더욱 흥미로울지도 모르겠다.

와인의 경우 750ml 와인액 자체의 무게에 가령 1kg에 가까운 유리 병 무게가 더해진다면 한 손으로 들고 와인 잔에 따르기에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무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4월, 영국 런던에서 매해 진행되는 국제와인품평회인 디켄터월드와인어워드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하루 6~70 종류의 와인을 시음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5~6명의 심사위원으로 구성된 테이블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다음 와인들을 준비하고 따라주는 일을 전담하는 담당 인력도 쉴 사이 없이 움직였다. 이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매끄러운 진행을 돕고자 필자가 속했던 테이블의 심사위원들은 본인의 잔에 와인을 직접 따르고 옆 사람에게 와인 병을 전달하며 심사를 진행했다.

5일 동안 들어 본 와인 병들의 무게는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병은 너무 무거워서 옆 심사위원에게 건네줄 때면 ‘준비 하세요, 근사한 와인이 갑니다’ 라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근사한 와인’이란 표현은 물론 그 반대를 의미하는 것이였고, 실제로 심사 결과도 대부분 그러하였다. 일반화 하기는 힘들지만 유달리 무거운 병에 담긴 거의 모든 와인에서 과한 오크향과 거친 타닌이 느껴졌고 이로 인해 전체적인 균형이 맞지 않았다. 진하고 강한 제각각의 맛과 향이 겉으로 맴돌며 조화를 이루지 못해 즐기기 힘든 와인들이었기에 점수도 낮게 주어졌다.


그렇다면 와인을 담는 유리 병의 무게는 어떻게 될까? 1㎏이 넘는 병들도 간혹 있지만 대략 500~600g에서 800g 정도 되는 병이 가장 흔하게 사용된다고 보면 된다. 글로벌 포장 전문 기업인 패키징 게이트웨이에 의하면 영국에서 판매되는 와인 병의 병균 무게는 511g이고 그 범위는 300g에서 1㎏이 넘는 경우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와인 업계에서도 에너지 절약,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 등을 염두에 두고 환경 친화적 포장(eco-friendly packaging) 방식을 택하는 생산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와인병 무게 줄이기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여러 관련 기관이나 기업을 중심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정부가 와인 및 모든 알코올 시장을 관리하는 모노폴 (monopole)시스템을 택하고 있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나 캐나다 및 미국의 몇 몇 주들이다.


특히 스웨덴 정부의 와인 및 알코올 유통을 독점 운영, 책임지고 있는 시스템볼라겟 (Systembolaget)은 2014년 지속가능 정책 (Sustainable Strategy)을 채택하면서 2016년 까지 모든 와인 병의 무게를 최대 420g으로 제한하고, 이를 넘기는 생산자에게는 벌금을 부과하기로 하였다. 현재 55% 이상의 와인이 박스형 (bag-in-box) 포장에 담겨 판매되고 있기도 한 시스템볼라겟이 택한 이 환경 고려 정책은 와인 업계에 강한 메시지를 제시하는 계기가 됐다.


세계 각국의 와인 기업 및 생산자들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자인 반피 (Banfi)의 경우 2009년부터 기존 500g 대의 와인 병을 400g으로 바꾸기 시작했고, 2014년 중반 부터는 360g의 병을 사용하고 있다. 반피에 따르면 가벼운 병으로 교체한 이후 6340t이나 적은 양의 유리를 사용하게 됐다. 그 결과 약 2440만 KWh (시간당 킬로와트)의 에너지 소비가 감소했고 800만kg에 가까운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칠레의 대표 생산자인 카르멘 (Carmen) 역시 리제르바 와인 병의 무게를 기존에 비해 24% 줄였고 이로 인해 1400t의 유리 사용을 줄일 수 있었다고 발표하였다.


이 밖에도 자체 브랜드 와인을 대량으로 유통하는 영국의 수퍼마켓 체인들을 비롯한 유통 업체들 역시 와인 병 무게 줄이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수퍼마켓 체인인 테스코의 경우 이미 2010년도에 가장 가볍게 제작된 300g의 와인병을 업계 최초로 도입, 가장 낮은 가격대의 자체브랜드 와인에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당시 연간 560톤의 유리 사용량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과거 많은 가정에서 물병으로 각광 받았던 무겁지만 튼튼했던 델몬트 오렌지 주스병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재활용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와인 병이 굳이 무거울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와인을 선택할 때 병 모양이나 라벨 디자인을 눈 여겨 보았다면 이제부터는 병의 무게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자. 무겁고 고급스러운 병에 담긴 와인이 고 품질의 뛰어난 맛을 선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니 말이다.


오히려 내용물 보다 포장에 더 많은 비용을 사용했을 확률이 높을 수 있다. 와인뿐 아니라 다른 알코올 및 일반 음료들에 있어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무거우면 운반하기도, 전달하기도, 따르고 즐기는 데에도 힘만 더 들 뿐이다.


[남경화의 와인으로 세상보기] 가벼운 병에 든 와인이 좋다 남경화 와인커뮤니케이터

남경화는 와인 커뮤니케이터이자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며 디켄터 월드 와인 어워즈를 비롯한 유수의 국제 와인 품평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다. 2005년 호주 와인 통신원 활동을 시작으로 한국, 호주, 홍콩, 프랑스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아 왔으며, 호주 애들레이드대학 와인비즈니스 석사 및 WSET 디플로마 과정을 마쳤다. 현재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와인 관련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마스터오브와인에 도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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