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희준 편집위원]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이 정국에 큰 회오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007년 11월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앞서 노무현 정부가 북한 정권에 의견을 물어본 뒤 '기권'을 결정했다는 내용이 불씨가 됐다. 한동안 미르·K스포츠재단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여권은 강도 높은 대야 공세에 나섰다. 새누리당은 "대한민국의 일을 북으로부터 결재받은 건 국기를 흔든 사태"라고 맹공을 퍼붓자 더민주 측은 "권력 게이트에 쏠린 국민 시선을 돌리려는 정치공세"라고 맞받아치면서 공세 차단에 주력하고 있다.
참여정부 외교 안보 정책에 관여한 송 전 장관은 최근 펴낸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노 전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뇌부 회의에서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의 의견을 물어보자는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의 견해를 문재인 당시 실장이 수용했으며, 결국 우리 정부는 북한의 뜻을 존중해 기권했다"고 밝혔다.
이에 새누리당은 대표가 전면에 나서 격한 표현을 써가며 문 전 대표를 맹비난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15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과 내통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이처럼 '상식이 없는 짓'을 한 사람들이 대선에 출마해 다시 그 방식을 이어가겠다는 것 자체가 더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이에 추미애 더민주 대표도 같은 날 미르와 K스포츠 재단 의혹을 덮으려는 술책이라고 맞불을 놓았다. 문 전 대표는 16일 SNS에 올린 글에서 "모든 것을 토론으로 결정한 노무현 정부야말로 건강한 정부였다"면서 "박근혜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배우기 바란다"고 역공을 폈다. 회의체 참석자인 김만복 전 국정원장과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백종천 전 안보실장도 관련 내용을 부인하고 있어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을 뿐이다.
또 정치권 일각에서는 송 전 장관이 대선을 1년여 앞둔 미묘한 시점에 관련 당사자가 치명타를 입을 게 뻔한 회고록을 왜 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심지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지원 사격을 위해 대권 주자인 문 전 대표의 아킬레스건을 꺼내 들었다" 등의 평도 있다. 심지어 일부 보수논객은 유력 대선 후보자인 문 전대표가 치명상을 입었다고 성급하게 말한다.
당시 관계자들 간 진술이 엇갈리는 데다 온갖 억척이 난무하면서 송민순 회고록이 제기한 의혹은 이제 '진실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민들은 엇갈리는 반응을 보이지만 '진실규명'을 공히 요구한다. "문 전 대표의 외교안보 철학과 소신이 무엇인지 묻는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앞으로 대통령이 되면 그러지 않겠다고 말하는 게 제일 무난한 수습책 같다", "야당은 법적대응을 해서라도 진실을 밝혀라" 등을 보면 그렇다.
진실은 온데간데없이 논란만 커진다면 이번 공방은 자칫 2012년 대통령선거를 전후해 장시간 여야가 치고받은 노무현 정부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 재연이 될 수도 있다. 여야는 이번 파문이 또다시 국정의 블랙홀이 돼 내년 대선까지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정확한 진상 규명에 나서는 게 급선무다. 여당의 과도한 이념 공세, 여야 간 정치공방은 성급하고 혼란만 가중시킨다.
박희준 편집위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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