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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대한민국 결혼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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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대한민국 결혼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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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추위 발기문

대한민국 솔로들의 한숨이 무겁습니다. 찬바람이 옆구리를 관통하는 가을, 머잖아 연말이라는 자기연민에 빠져 술과 탄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공허함과 상실감은 우리 사회에 깊은 그늘을 드리웁니다. 솔로가 더 이상 외롭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소명입니다. 이를 위해 오늘 결추위(결혼추진위원회)가 분연히 떨쳐 일어섰습니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솔로들에게 불편을 넘어 불쾌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왜 식당 테이블은 대부분 네모난 네 자리여서 혼자서 밥 먹는 것이 뜨악하게 비치는 것일까요? 왜 우리 사회는 결혼식과 돌잔치로 축의금을 꼬박꼬박 납세토록 하면서 이를 만회할 기회를 솔로들에게 주지 않을까요? 솔로인 삼촌이나 이모는 왜 명절 때마다 조카들에게 용돈을 강탈당하면서도 이의 제기를 하지 못할까요? 직장에서는 솔로라는 이유로 동료들의 저녁 술자리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야근수당 없는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런 부당함을 피해 미혼에서 기혼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마땅히 환영할 일이고, 그것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인구 절벽의 해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솔로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없애는 것 또한 중요한 과업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기혼자와 미혼자의 간극을 줄여 불편부당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한 실천 방안으로,
첫째, 솔로에게 진정한 솔메이트를 연결해주는 데 있어 우리 모두는 내 일처럼 정성을 다하고
둘째, 솔로가 솔로로 남아 있는 동안에는 혼자서도 품격 있고 자유롭게 밥 먹고 영화를 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셋째, 솔로가 그동안 뿌린 축의금을 수시로 회수할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하는 데 있어 또한 우리 모두가 깊이 숙의하면서
넷째, 솔로에게 '미혼의 데드라인'을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저들이 존엄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해나갈 것입니다.


2016년 10월13일 대한민국 결혼추진위원회


피식, 웃음이 삐져나온다. 있지도 않은 결추위 발기문을 농담처럼 끄적여 놓고 보니 3류 코미디다. 잡설에 가까운 텍스트들이 솔로들에게 위로가 되기는 할는지. 어쭙잖은 훈수는 아닌지. 혹시 저 코미디에도 우리 사회가 고민할 여지가 있는지.


얼마 전 옆자리 후배를 위해 사내에 결추위가 구성됐다. 실은 앞자리 후배도 결추위가 필요한 처지다. 바야흐로, 결추위의 계절. 하지만 현실은 혹한의 계절. 싱글 탈출의 길은 곳곳이 지뢰밭이다. 집값은 연봉보다 언제나 앞서 달리고, 어찌어찌 집을 사더라도 방 몇 개쯤은 '은행 몫'으로 내줘야 한다. 출산 장려의 목소리는 요란하지만 정작 아이를 낳아 키우려면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을 총동원해도 눈앞이 캄캄하다. 그러니 누구는 일과 결혼해버리고 누구는 사무실과 동거해버린다.


그렇게 혼밥족, 혼술족이 늘어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27.2%가 1인 가구다. 이 수치가 2025년에는 30%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은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결혼장애' 증후군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집, 돈, 직장, 맞벌이, 출산, 육아, 교육, 노후….


이런 난관들을 외면한 채 전국에서 결추위가 벌떼처럼 일어선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디서 돈다발을 끌어와 으리으리한 재단을 설립한들 결과가 아름다울까. 그보다는 솔로에 대한 이해심과 존엄성을 회복하는 편이 낫다. 우리 안의 결혼장애를 치료하는 것이 시급하다. 결혼은 저들의 몫으로 남겨놓은 채.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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