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법 기준에 행사 연기도 속출
"선례 없어 당분간 상황 주시할 것"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유통업계가 오는 28일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시행을 앞두고 간담회를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 중구의 A특급호텔은 다음달 1일, 호텔 개관 40주년을 기념해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관련행사를 열 예정이었다. 올 초 세계적인 호텔그룹과 제휴를 맺은 데다, 이를 계기로 국내를 넘어 '글로벌 럭셔리 부티크 호텔'로 도약하기 위한 의미있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에 간담회에서 40주년 기념 로고와 신규 그랜드볼룸 개관 등을 공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김영란법 시행 직후 열리는 첫 행사라 이목이 집중될 수 있다는 판단에 결국 간담회를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 간담회 자체가 김영란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언론사'에 동등한 기회를 줘야한다는 부분에 대한 법 해석이 달라, 무리수를 두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B특급호텔 역시 올 12월 개관 50주년을 맞지만, 별도의 기자간담회는 열지 않을 예정이다. 최근 신규 호텔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상황이라 50년의 역사를 갖게 된 데에 각별한 의미가 있지만, 김영란법 부담까지 떠안으면서 모험할 필요는 없다는 설명이다.
타호텔 관계자는 "모든 언론사를 초청해야한다는데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호하다"면서 "출입등록된 언론사는 100여곳인데 이들 외 언론사에는 어떻게 접촉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이를 명확히 알려주는 기관도 없어 간담회를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 유통업체들이 '총대'매기를 꺼려하는 상황에서도 일부는 예정대로 간담회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의 C특급호텔은 다음 달 중순께 기자간담회를 연다. 업장 리뉴얼을 대대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다. 김영란법 시행 직후라 부담이 커서 한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등에서만 공개할까했지만, 호텔 내 최대 행사인 만큼 보다 공식적인 채널에서 효과적으로 알리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이 호텔 관계자는 "모든 언론사에 공정한 기회를 줬다는 증거가 있으면 된다고 해서, 각 기관에 등록된 언론사 1000여 곳에 메일을 보내는 한편 공식 홈페이지에 간담회 개최를 공지하는 식으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장소 제약상 60~80명 정도의 좌석만 구비되는데 1000여개 매체 중 누구를 자리에 앉힐 것인가도 고민이기 때문이다. 초청장에 회신이 오는 대로 선착순 진행할지, 행사 당일 오는 순서대로 입장시킬지 기준을 못정하고 있는 것. 제비뽑기로 추첨하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호텔 관계자는 "법적으로 100% 완벽하게 진행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대행사와 함께 논의하고 있지만 선례가 없는 터라 명쾌한 답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D커피전문점도 다음달 중순께 기자간담회를 치를 예정이다. 기존에 했던 대로 행사를 치르되, 공식 홈페이지에는 간담회 개최 내용을 공지하는 식으로 '면피'는 하겠다는 설명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당장 시급하고 중대한 행사가 아닌 이상 당분간은 다른 업체들이 어떻게 행사를 치르는지 지켜보고 갈피를 잡아가자는 분위기"라며 "선례가 없기 때문에 직접 부딪히면서 하나하나 기준을 세워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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